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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06. 2021

능동적 vs. 수동적

당신은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살다 보면 수동적일 때도 있고, 능동적일 때도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수동적이다. 노동은 대부분 수동적이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퇴근 시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든지, 할당량을 빨리 채우기 위해 바쁘게 머리 굴림과 손놀림을 하는 시간도 결국은 수동적인 시간이다. 내 강의를 듣는 대부분의 학생은 수동적이다. 아주 소수의 능동적인 학생이 있기는 하다. 강의 자체가 재미없어 수동적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책임과 의무 때문에 하는 것은 대부분 수동적이다.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졸업장을 얻기 위함이라 수업시간에 능동적으로 되기 어렵다.


놀이를 할 때 능동적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할 때도 능동적이다. 재미로 하는 스포츠 말이다. 골프나 배드민턴이 내가 하는 운동이다. 배낭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은 능동적일 수밖에 없다. 계획을 잘 만들어야 위험하지 않고 재미있는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배낭여행 자체도 능동적이다. 일상을 벗어나 모든 것을 잘 선택해야 한다. 능동적인 선택을 하는 시간이다.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없을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보람차고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초등과 중등 교육 12년이란 시간은 산업사회에서 노동할 인력을 양성하는데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50분 꼼짝 못 하고 앉아 있다가 겨우 10분의 휴식시간을 즐기는 것을 무한 반복하면서 호모 사피엔스의 의식과 육체를 길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길들여져야 사회에 나가 해야 하는 모든 노동을 군소리 없이 한다. 산업사회가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교육은 수백 년의 관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구조 자체가 수동적인 인간을 만들면서 이즈음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창의력과 재미는 동의어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창의적일 수 없는 일이다. 성실하기만 한 사람은 21세기에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에 갑갑한 사람이 근면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물론 21세기에도 근면 성실은 필수 불가결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재미를 되찾아야 한다." 한 때는 미디어에서 자주 보이던 김정운 교수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의 주제 문장이다.


지금은 생후 25개월이 되었지만 외손주가 18개월 때였다. 외손주의 모든 말과 표정이 다 내겐 재롱이다. 질문을 하면 간혹 제대로 된 답을 한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귀여워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 내 아이폰을 준비하고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러면 딴 청을 부린다. 그렇게 같은 재롱을 절대로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 처음은 재롱이지만 두 번째는 노동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기 싫은 것은 절대 안 하는 시절이 분명 모두에게 있었다. 노동을 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 아니 노동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이 그때 있었다.


만일 지금의 모든 경험과 기억을 갖고 다시 환생하여 21세기를 산다면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에 있는데 굳이 그 지겨운 학교를 다닐 까닭이 없다. 수동적인 인간으로 길들이는 교육을 받기에는 지금 세상은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다. 엄마가 일하기에 어린이집을 매일 가야 하는 외손주는 가끔 아침에 똥땡깡을 부린다. 어린이집 안 가겠다고, 엄마랑 집에서 놀겠다고, 엄마만큼이나 바쁜 외할머니 집에 가겠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통하여 돈을 번다. 정신적인 노동도 있고, 육체적인 노동도 있다.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노동이 갖는 반복적인 특성 때문이다. 육체적인 노동뿐 아니라 정신적인 노동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고 사용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살아 오지는 않았는지?

과시적 소비를 통하여 자신을 남에게 알리고자 노력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살고 있지는 않은지?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어르신은 더 이상 수동적일 이유가 없다. 그 많은 자유시간을 능동적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길들여진 가축이 철책을 넘어 무리를 떠나지 않듯이, 수동적으로 길들여진 어르신 역시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속했던 안온한 사회 주변을 서성거리며 방황한다. 능동적으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영정사진으로 쓰면 어떨까?

P.S. 지난주에 다이빙 슈트를 입었어요. 캄보디아에서 만들어진 5미리 두께의 슈트는 구명조끼 없이도 절대 가라앉지 않더라고요. 제주의 바닷물이 엄청 깨끗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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