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을 걷고 있었다. 어르신이 하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 걷는 것이다.
랜드로버 한 대가 일방통행인 골목길에서 나를 추월하여 스르르 정차한다. 랜드로버 한 대 가격은 국산 동급 SUV의 세 배다.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내 걸음걸이로 랜드로버를 거의 지나칠 무렵 갑자기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딴짓하지 말고 빨리 내리라 그랬지! 너 학원 안 가고 도망치면 죽을 줄 알아!”
목소리가 너무 무서워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수석에서 내린 여성이 뒷 문에서 내린 열 살 정도의 사내아이에게 하는 소리다. 영양상태가 제법 좋아 보이는 사내아이가 어설픈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여성의 목소리가 너무 섬뜩하여 '퍽'이나 '짝'하는 소리가 바로 날 것 같다. 이 공포 속에서 아빠인 듯한 남자는 침묵하고 있다. 아마도 부모가 아이를 학원에 내려주는 것이리라.
자식은 하늘이 준 선물인데 교육이니 훈육이니 하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를 때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무서운 목소리를 매일 듣고 사는 아이가 불쌍해 보인다.
사람은 환경이 만든다. 친척, 학교, 직장 등도 환경이다. 좋은 학교란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환경이고, 좋은 직장이란 훌륭한 선배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나 부모가 제일 중요한 환경이다. 역사적으로 가부장 사회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소유물이었다. 아이의 인권을 주장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앞 약국에 앉아 내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을 멘 남자와 바퀴 달린 여행가방을 끄는 여자가 들어온다. 역시 배낭을 멘 중3이나 고1로 보이는 학생이 따라 들어온다. 영양 상태가 좋아 보이는 학생과 여자가 내 옆에 앉고 남자는 내 앞에 앉는다. 남자가 여자에게 기차표 예약하라더니 금세 자리가 많다며 할 필요 없단다. 아마도 모든 경제권을 여자가 꽉 쥐고 있어 기차표 예매조차 여자의 일인가 보다. 내 옆에 앉은 학생은 안고 있던 배낭에서 유학 안내서를 꺼낸다. 엄마에게 하는 말인지 아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그리고 우리말인지 외국어인지 모를 말을 한다. 옆에 앉은 엄마가 우리말로 대꾸하는 것을 보니 우리말이었다. 아마도 언어장애나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것이리라. 지방에서 서울대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 내려갈 모양이다. 장애를 갖고 한국에서 교육받기 어려워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가 보다.
어디서 읽었다. 아이는 세 살까지 부모에게 온갖 재롱 피운 것으로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다한 것이다. 자식의 재롱을 즐기고 못 누리고는 부모 탓이다. 내년 2월이면 외손주가 만 세 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