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찾는 골프장에 목련나무가 많다. 한 그루 큰 목련이 서 있기도 하지만 서너 그루가 모여 있기도 한다. 만개한 목련꽃과 아름다움을 견줄 꽃은 없다. 순백의 꽃들이 화려하고 아니 우아하다.
페어웨이로 잘 날아간 내 공과 달리 친구가 드라이버로 친 골프공은 목련 나무 근처로 날아갔다. 그 덕(?)에 눈으로 친구의 공을 좇다 만개한 여러 그루의 목련꽃에 취한 듯, 어지러움을 느꼈다.
목련나무 근처에서 두 번째 친 친구의 공이 목련꽃 무리 속으로 들어가더니 나무 가지를 꺾고 페어웨이로 들어왔다. 떨어진 가지에는 안타깝게도 두 송이의 목련꽃이 달려 있었다. 나는 두 송이의 목련꽃을 주워 들었다. 활짝 피어있는 목련꽃에 나는 코를 들이댔다. 은은한 꽃향기가 난다. 코로나 걸리면 냄새를 못 맡는 증상이 있다던데, 목련꽃 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버려두기 너무 죄스럽고 안타까워 부러진 가지를 계속 들고 다녔다. 수시로 꽃내음을 맡으며...
두 홀을 지나 짧은 파 3홀에서 앞 팀의 그린 플레이 끝나기를 티박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캐디가 내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다.
"회원님, 목련꽃 좋아하시나 봐요?"
"모든 꽃이 좋지. 활짝 핀 꽃이 공 맞고 떨어지니 안타까워 들고 다니는 거야."
"목련 꽃의 꽃말을 아세요?"
"꽃말? 글쎄 모르겠는데..."
"어제 다른 회원님한테 들었어요. 목련꽃의 꽃말이 불륜이래요.."
"무슨 뜻 이래?"
"화려하고 짧게 피었다가 지는데, 목련꽃잎이 땅에 떨어지면 금세 거무죽죽하게 변해서 그 일대를 더럽히잖아요. 그래서 불륜이래요."
나이 들면 꽃이 예쁘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젊을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목련 꽃잎이 잔뜩 떨어져 지저분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다. 벚꽃잎이 잔뜩 떨어져 바람에 날려 한 구석에 모여있는 것을 보면 심지어 눈물이 난다. 예전보다 확실히 감성적으로 변한다. 호르몬의 영향이려니 하지만...
벚꽃이 한창이었다. 이 봄을 서울에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여주, 황간, 안동을 2박 3일 동안 쏘다녔다.
황간에 정착한 친구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 시였다.
황간읍 천변에 벚꽃이 흐드러졌다. 야간 조명에 뽀얀 천변을 친구와 밤에 걸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 속을 너랑 걷다니 우리 혹시 전생에 연인 사이는 아니었겠지?”
“징그러운 소리 하고 자빠졌네!”
“벚꽃이 어떻게 이렇게 이쁠 수가 있냐?”
“너 요새 남성호르몬은 하나도 안 나오나 보다! 벚꽃에 환장하는 것을 보니...”
전국의 벚꽃이 모두 피었다. 천변이나 가로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벚꽃이 365일 내내 만개해 있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천국, 유토피아, 샹그릴라, 무릉도원일 것이다.
바람에 벚꽃잎이 날리며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것은 거기서 죽음을 느끼는 것 아닐까? 이제 어르신 되어 자신의 죽음도 멀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더욱 만개한 목련이나 벚꽃을 보면 지금을 즐겨야 한다는 본능이 용솟음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