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아침마다 확인하는 것은 날씨가 아니고 미세먼지다.
구름은 많지만 대기는 깨끗한 토요일 아침.
이런 날은 걸어야 한다. 노화의 하나인 추간공 협착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공기가 깨끗하고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에는 어딘가를 걸어야 한다.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에 대학 동기 등산모임이 있다. 올해는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하기로 했다. 지난 1월부터 우이동에서 시계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난 토요일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하루 전 금요일에 119 구급차 불러 아버지를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시켰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토요일 동기들이 걸었던 불광중학교부터 효자치안센터까지 걸어야 한다. 다음 달 모임을 따라잡기 위해.
게으름은 모든 동물의 본능이다.
불광중학교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로 이동시간이 거의 한 시간이다. 오늘은 아닌 것 같다. 사람 없는 평일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냥 근무하는 학교까지 걷기로 했다. 등산화 신고 집을 나와 혜화문에서 낙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잘 정돈된 한양도성길이다. 영산홍 꽃들이 지는 중이다. 주변에 지저분한 꽃잎들을 떨구고 있다. 다행히 연녹색의 잎새들이 눈을 편하게 해 준다. 금세 낙산 정상이다. 주위를 둘러봤다. 멀리 수락산이 보이고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이 깨끗하게 보인다. 보현봉은 바로 눈앞이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
소설가 한수산의 산문집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의 첫 문장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이 문장으로 어르신 소설가는 넋두리를 시작했다. 엊그제 처음 책장을 넘겼을 때 이 문장은 내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몇십 년 전에 읽은 소설의 구절이 기억날 리도 없고 톨스토이의 소설은 다 너무 길었다. 명작이고 고전이라니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읽었던 기억뿐이다. 낙산 위에서 펼쳐진 경치를 보며 이 말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 과연 그럴까?
아버지는 벌써 일주일째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해 두었기에 더 나빠진대도 중환자실로 옮겨 기도삽관과 인공호흡은 하지 않는다. 에크모로 잘 알려진 체외 생명유지술도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나와 어머니가 엊그제 사인했다. 일반 병실에서 코에 산소를 공급하여 혈액의 산소포화도를 유지하고 있다. 산소공급 없이도 산소포화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면 퇴원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언제 임종하실지 알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 병실 면회도 안된다. 코로나 검사한 간병인만이 아버지 침대 옆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는 죽음을 기다리는 중이다.
나도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는 중이다. 학교 내 연구실에 도착했다. 아침의 산책은 무의미한 경험일까? "사랑 없는 섹스는 무의미한 경험일 뿐이야."라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무의미한 경험이란 없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아버지처럼 코에 산소를 흘리면서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팔에는 바늘을 꼽고 꼼짝도 못 한 채 누워 숨이 멎기를 기다릴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무의미한 경험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