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n 15. 2021

아들이 몇 달째 놀고 있다.


6년을 다닌 대기업을 지난 3월에 미련 없이 퇴사하고 아들이 몇 달째 놀고 있다.


지난주에는 제주도 표선에서 3일 동안 강습을 통해 프리다이빙 2급 자격을 취득했다고 한다.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바닷속 16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는 자격증이란다. 바다를 좋아하고 물고기를 엄청 더 좋아하는(?) 아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다, 배 타고 하다, 이젠 아예 물속으로 들어가 잡을 모양이다.


제주도에서 거의 두 달을 보내고 오늘 제주도를 나온다. 배 타고 목포를 거쳐 귀경하는 이유는 자동차를 제주도까지 가져갔기 때문이다. 나도 차를 갖고 제주도 갈 생각을 한 적 있다. 배표를 예약하기 직전에 포기했다. 뱃멀미가 심한 내가 멀미라도 하는 날에는 난감한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서였다.


2000년 전후였던 것 같다. 겨울방학에 온 가족이 인천에서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로 배 타고 갔었다. 배 삯을 할인하여 비행기표 값의 반도 안 한다는 광고를 신문에서 보고 가족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온 가족이 이층 침대가 두 개 있는 선실을 예약하고 인천 국제여객부두에 갔다. 제법 큰 배가 부두에 있었다. 아마도 세월호 만한 배였던 것 같다. 산둥반도의 웨이하이가 그리 먼 곳도 아닌데 배는 저녁에 출항하여 새벽에 도착하는 스케줄이었다. 배에는 제법 큰 레스토랑도 있었고 면세점도 있었다. 심지어 사우나를 갖춘 목욕탕도 있었다. 갈 때는 별 문제없었다. 약간의 뱃멀미를 느꼈지만 침대에서 잘 만 했다. 열흘 이상 웨이하이, 제남, 곡부, 태산을 기차와 버스로 돌아다녔다. 중국이 영어가 안 통해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아이들과 좋은 경험이었다.


문제는 귀국 편이었다. 역시 저녁 무렵에 승선했다.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전망 좋은 선상 레스토랑에서 날리는 눈을 보며 저녁을 먹었다. 중국 가족 배낭여행을 무사히 끝냈다는 것에 뿌듯했다. 카레라이스를 먹었던 것 같다. 선실을 특실로 업그레이드하였다. 특실은 배의 제일 앞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도 있어 배의 앞 갑판도 잘 보였다.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웨이하이 항구를 벗어나자 파도가 점점 높아졌다. 큰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뱃멀미를 시작했다. 내가 가장 심하게 고통스러워했다. 침대마다 있는 쓰레기통에 우선 저녁을 다 토했다. 토해도 토해도 끝이 없다. 점심도 토하고 위장을 지나 소장까지 내려간 아침식사까지 토한 것 같다. 누워서 쓰레기통을 부여안고 있었다. 아니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큰 파도가 밀려오면 배의 앞 쪽이 파도를 넘기 위해 들린다. 솟구친 뱃머리는 다음 파도를 맞기 위해 뚝 떨어진다. 들리고 떨어지기를 무한 반복한다. 놀이동산에 있는 바이킹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배가 들릴 때 두려움이 몰려오고 배가 떨어질 때 공포 속으로 떨어진다. 너무너무 괴로워 별 생각을 다했다. 연옥(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하여 불로써 단련받는 곳)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했다.  만약 중국으로 갈 때 이렇게 파도쳐서 멀미를 했다면, 오는 배편을 포기하고 편도 비행기표를 샀을 것이다. 다시는 연옥을 경험하지 않겠다고. 밤새 토하면서 어서 이 연옥을 통과하기를 기도했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결심했다. 다시는 배 타지 않겠다고. 놀이동산의 바이킹도 절대 거들떠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 날씨가 좋지 않다. 제주도와 남쪽 지방에 비가 많이 온단다. 이런 날 아들이 배 타고 제주도를 나온단다.


아들 보러 몇 주 전에 제주도 갔었다. 4박을 함께 했다. 제주도 서쪽 해안의 수월봉에서였다. 주차장에서 1톤 트럭을 개조한 캠핑카를 보았다. 주인은 내 나이 또래의 수염을 기른 어르신이다. 혼자 여행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행이 아니고 혼자 캠핑카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석아 너도 오피스텔 방 빼고 저런 캠핑카 하나 구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 어때? 한 2년 저렇게 살면 우리나라 바닷가는 다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가끔 태워주면서..."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며,

“나더러 2년이나 더 놀란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100세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