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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03. 2016

당신의 전성기, 오늘

오늘이 내 여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YTN FM Radio 94.5 MHz에서 오전 10:10-11:00에 하는 프로그램 이름이다. 만 88세 이신 아버지와 점심 식사하기 위해 분당으로 차를 달릴 때 강북강변도로 거의 같은 지점에서 항상 듣게 된다. '내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전성기, 매일 오전 10시 여기서 찾아드립니다.'

아버지는 이즈음 거동조차 힘들어하신다. 오른손에 지팡이 집고 왼손은 아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나이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더니 아들 손 잡고 걷는 아버지가 많이 안쓰럽다.  그런 아버지 만나러 가는 길에 전성기가 바로 지금이라니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가?

나는 항상 아버지에게 묻는다. 무엇이 하고 싶으시냐고? 무엇이 먹고 싶으시냐고? 그러나 아버지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딱히 드시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서 전에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경험인 다양한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고기가 질기거나 밥이 딱딱하거나 스파게티 면발이 맘에 안 드신다고 항상 투정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에게 묻지 않는다. 그냥 평양냉면집으로 가서 빈대떡 한 장과 냉면 두 개를 시킨다. 선택은 물냉면이냐 비빔냉면이냐 뿐이다. 근 80년을 드신 냉면에 대해서는 투정이 전혀 없다. 식사 후에는 냉면집 옆에 있는 손님이 거의 없어 곧 망할 것 같은 카페에 가서 설탕을 두 개나 넣은 에스프레소와 달달한 레몬 케이크를 주문한다. 아버지는 단 것을 정말 좋아하신다. 평생 좋아하신 것 같다. 이제 아버지의 재미란 거의 매주 아들 둘과 번갈아 가면서 함께 점심하는 것이 유일한 것 같다.

오늘이 내 남은 여생 중 가장 젊은 날이다.  그래서 오늘이 전성기이다. 전성기인 오늘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것이 구체적으로 있어야 한다. 먹고 싶은 것이 바로 딱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었을 때 행복할 수 있다.

환갑에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하며 환갑을 기념하고 싶은가? 2년 뒤 환갑 때 무엇을 할 것인지 조차 정하지 못한다면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이냐를 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환갑 기념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단발성 이벤트지만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정답이 없는 진행형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인생을 살다 주변을 정리도 못하고 갑자기 죽음을 맞는다면 얼마나 한심한 인생인가?

김광석의 노래 가사처럼 '또 하루가 간다.'

목련의 전성기는 짧지만 다행히 매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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