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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03. 2016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

난 80까지 살고 싶다.


토요일 아침 7시에 4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 전체에 방송을 한다. 111동 34라인 경비초소 위로 할아버지가 투신하셨단다. 신원을 모르니 가족이 확인을 해달란다. 비상계단의 높은 창문을 어떻게 할아버지가 기어 올랐을까? 뛰어 내리는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화창한 토요일 봄 날 아침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몸을 던져 하늘로 올라가셨다.

"또 한주간의 생을 부여 받고 교회 밖 저 험한 세상으로 흩어져 나가는 우리 성도들의 머리 머리 위에 주께서 은총을 내려주시고..." 주일 예배의 마지막에 목사님이 하시는 축도였다. 간염이 재발하여 언제 이 세상을 떠야할 지 모를 때 일주일의 시간을 확보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언제 끝나는지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생이나 미혼인 젊은 사람에게 언제까지 살고 싶으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직 이 생에서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아직 이루고 하지 않았으니 물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을 묻는 것은 실례일 뿐이다.

그러나 환갑을 즈음한 인생이라면 언제까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자신이 정하고 있어야 한다. 아직 이 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더 없는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남았는지 누가 물어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아까운 인생 낭비하지 않고 혹시라도 큰 병에 걸려도 어떤 치료를 할지 자신이 정할 수 있다.

이렇게 정하는 것이 구체화하는 것인데 우리는 대부분 구체화에 능하지 못하다.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내가 몇 살까지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배우자가 내게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내 자식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등 구체화할 것은 너무 많은데 구체화하지 않고 그냥 산다.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안하는 것이다. 백세넘어 살고 싶은데 혹시라도 내가 정한 수명까지만 살게 될까봐.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몇 살까지 살고 싶다니...

난 80까지 살고 싶다. 사실 이미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하나님이 내 앞에 나타나 "너는 몇 살까지 살고 싶으냐?"고 물으신다면 80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련다. 왜 80이냐고 물으신다면, 80까지 배낭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에바 페론도 묻혀 있는 브에노스아이레스 공동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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