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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16. 2016

캄차카 1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살지 못한다.

여행을 가기 위해 목적지를 정하고 비행기표를 카드로 결제할 때가 여행의 즐거움의 절정이다. 나이 들어 여행을 가기위해 짐싸는 것이 왜 이렇게 귀찮은 걸까? 결국 하바로브스크행 오후 1시 비행기 타는 날 아침에서야 주섬주섬 챙겨서 배낭을 쌌다. 아마 챙긴 것보다 빠트린 것이 더 많을 듯... 지난번 남미여행 갔다온 뒤의 배낭을 정리하지 말고 그대로 둘껄 그랬다. 빨래거리만 교환해서 그 배낭 걍들고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앞으로는 항상 배낭을 거의 완벽한 상태로 거실에 놓아두어야겠다. 여행을 갈 때마다 짐을 쌀 필요가 없게 말이다. 누군 짐싸는 것이 즐겁다던데...

공항 리무진 버스를 헐레벌떡 올라 탔다. 드디어 배낭 메고 떠난다. 캄차카 반도(정식명칭은 페트로 파블로브스크 캄차츠키)를 왕복하는 아에로플로트 비행기표를 지난 남미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 만에 끊었다. 그 때가 절정이었다. 갈 때는 하바로브스크 경유 올 때는 블라디보스토크 경유하는 러시아 항공 비행기표를 50만원도 안되는 값에 끊어버릴 때 말이다. 출발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점점 불어난다. 이번 학기 성적 빨리 입력하느라 스트레스 받고 배낭 싸야 한다는 스트레스 받고 호텔 선택하여 예약하느라 스트레스 받다가 드디어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어제 밤에는 내가 이 여행을 떠날 수는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이 느껴지는 순간 혈압약은 제대로 챙겼는지 우산은 빠트리지 않았는지 영 불안하다. 없으면 없는대로 다 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수백번도 넘게 뼈저리게 경험하고서도 걱정이 앞선다. 누가 그랬다.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하는라 현재를 살지 못하고 정신과 마음은 항상 엄한 곳을 헤매이고 있단다.

하바로브스크 공항에 도착했다. 20년 전에 러시아 연구소와 공동연구 하느라 모스크바를 자주 방문했었다. 길게는 한번에 3달씩 체류한 적도 있어 러시아는 왠지 친근하다. 극동러시아는 처음이지만 예전의 러시아가 확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비자가 필요없고 입국카드를 비행기에서 나눠주지 않더니 입국심사관 본인이 직접 컴퓨터에 입력하고 출력물에 사인하라고 내게 건네더니 출국카드만을 여권에 끼워서 준다. 이렇게 친절한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전에는 세관신고서에 달러를 얼마 갖고 있다고 쓰면 세관에서 도장 찍어주고 출국할 때 까지 그 도장 받은 세관신고서를 갖고 있다가 출국할 때 다시 적은 세관신고서와 비교하고 심지어 남은 달러 얼마인지 확인한다며 달려들기도 했었는데 아예 세관신고서 용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 배낭을 X-ray 로 보더니 걍 가란다. 정말 좋아졌다. 10년 전 20년 전 다니던 러시아가 아니다. 부친 짐이 없어 일등으로 나왔는데 환전할 부스가 공항에 안보인다. 이런 달러밖에 없는데 어떻하지? Information이라고 쓰인 곳이 있길래 다가가니 러시아 아줌마 한 분이 앉아 있다. 예전에도 영어가 잘 안통하는 러시아에서 가장 도움 되는 친절한 사람들은 러시아 아줌마들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인투리스트 오피스의 타냐와 러시아호텔 층지기였던 나타샤와 타강가극장 앞에서 매진된 공연인 줄 모르고 표 사려고 두리번 거리는 내게 다가와 자기표가 두장이라며 함께 공연을 보았던 올가가 기억난다. Expedia 에서  예약한 Versal hotel 예약증서를 보여주니 친절하게도 러시아 이름을 옆에 적어준다. 혹시라도 택시운전수가 영어를 모를까봐... 역시 친절한 러시아 아줌마! 20달러를 주기로 하고 택시에 올랐다. 캡이 없는(정식 택시는 아닌거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다. Versal 이란 단어가 낯설어 호텔에 도착하여 인터넷에서 찾으니 바로 베르사이유.. 오늘 극동러시아의 중심 하바로브스크의 베르사이유호텔에서 혼자 잔다.

베르사이유 호텔(궁전 아니고)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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