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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18. 2016

캄차카 2

난 아무래도 추억강박증...

하바로브스크는 아무르 강변에 형성된 도시이다.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불리우는 아무르강이 우수리강과 만나 더 큰 물줄기를 만드는 곳이다. 아무르 강변에 나왔다. 강변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모래사장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남녀들과 낚시하는 노인들이 있다. 아무르강변에서 자전거를 탔다. 한시간을 빌렸는데 채 5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엉덩이를 비롯한 온 몸이 힘들어한다. 원래도 유연성이 부족한 몸이었는데 이제는 나이들어 더 뻣뻣해지고 특히나 엉덩이 근육이 빠졌는지 자전거 안장이 이렇게 아프고 불편할 수가 없다. 이즈음 한국의 많은 남녀들이 엄청나게 자전거들 타던데 모두들 이 어려움을 극복한 것일까?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습관적으로 셀카도 찍었다. 셀카로 보는 나의 모습이 영 아니다. 왜 그렇지? 

모자 때문이다. 1992년 6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기념품으로 산 벙거지 모자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고 무엇인가 기념품을 사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다. 특히 큰 감동을 받은 장소에서는 이 감동을 평생 잊지않고 기념할 무엇인가를 사고 싶어한다. 어머어마한 버팔로떼를 보고 교과서에 나오는 'Old Faithful'을 보았으니 나도 무엇인가 기념될 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카키색의 순면으로 된 벙거지 모자에는 동물들의 여러 문양이 그려진 띠를 두르고 있고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만든 모자 였다. 

1992년 6월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산 모자를 아직도 갖고 다니는 것은 그 모자를 산 시간과 장소와 그 때의 분위기를 비롯한 추억을 아직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아내와 어린 두아이를 품고 미국대륙을 횡단하던 그 기개를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성숙하여 곧 시집가겠다는 딸이 그 당시 만 네살 반이었다. 이 딸은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고, 갖고 싶은 욕구도 많았다. 그런 욕구를 다 들어주기에는 힘에 부친 아내가 그 날도 딸을 혼내었다. " 넌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우석이 좀 봐. 얌전히 있잖아." 엄마한테 혼나고 주눅들어 있는 딸 보기가 마음 아파 새벽에 숙소에서 조용히 안고 나와 옐로스톤 호수가에서 다독여 줄 때 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모자는 많은 여행을 나와 함께 했다. 내 페이스북 대문 사진에도 이 모자를 쓰고 있다. 그 사진은 1993년 2월 콜로라도 메사베르데 국립공원에서 찍은 사진에서 얼굴만 오려낸 것이다. 

서울로 직장을 옮긴 1996년에 'MBC2580'에 잠깐 얼굴을 비친 적이 있다. 도시가스관 매설이 완벽하지 않다는 고발프로그램 이었는데 평창동 지하 하수관에서 하수관을 관통한 도시가스관을 보면서 위험함을 인터뷰할 때 이 벙거지 모자를 쓰고 했다. 그 당시 나를 인터뷰하던 기자가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노웅래의원이다.

딸이 결혼하겠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아내가 집수리를 하겠단다. 지금의 이 집 상태를 사위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집은 온통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다. 이즈음 뉴스에 가끔 나오는 저장강박증 환자들의 쓰레기더미의 모습은 아니지만 결혼한지 30년이 지나면서 네 식구가 만들어지고 큰 딸이 이제 결혼하여 집을 나가겠다는 선언을 할 정도가 되니 집안의 모든 공간은 우리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물건 하나 언제 어디서 왜 샀는지가 기억되는데 이것들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내가 기껏 한다는 답이 "필요한 것만 들고 나가고 나머지는 전부 버리면 돼."

"난 못해. 난 아직 내 추억을 버릴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어. 당신꺼나 버려. 내 것은 건드리지 말고..."

난 아무래도 추억강박증 환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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