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l 29. 2021

남은 인생의 의미

있기는 한 것일까?


진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나는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의 인생이 진부하게 끝난다면 너무나 참혹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 매사 진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창조주 하나님이나 구세주 예수님이나 아니면 부처님이나 공자님이 보시기에 과연 진부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인생도 진부했던 것 아닐까?


냉소적인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다. 특히 태평양전쟁 중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사망한 수많은 일본인의 죽음을 의미 없는 ‘개죽음’이라 했다. 인생은 원래 의미가 없고, 흘려지는 인생이 아닌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 위해 마루야마는 매일 오토바이를 탄다. 그리고 호구를 위해 매일 소설을 쓴다.


의미란 무엇일까?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자 많은 사람이 노력한다. 여기서의 의미는 가치다. 많은 사람이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면 가치란 무엇일까? 무엇이 인생의 가치인가? 한 달, 일 년처럼 정해진 시간의 가치는 분명 있다. 학생 시절이나 신입사원 시절의 가치는 발전을 위한 시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발전을 아무도 요구하지 않고, 자신도 기대하지 않는 어르신의 인생의 가치와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은퇴를 전후한 어르신 인생의 가치와 의미는 있기는 한 것일까? 이미 사회적 죽음을 맞이했는데 20대나 30대의 가치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혹시 영생을 기대하는 바보스러움 아닐까?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 한 소방관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한다. 남을 구조하기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일하다가 죽는 사람도 많다. 가족들의 아픔이 부각되고 그 아픔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지만 정작 억울하고 원통해야 하는 사람은 본인이다.


글은 정리된 생각이다.


글을 수정하는 작업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글과 말에서 우리는 많은 추상명사를 사용한다. 추상명사의 뜻과 의미를 사회가 공유하고 나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의 강연 중에 ‘추상명사들이 존재하는 것인가?’란 질문이 있었다. 보통명사는 실존하는 것에 붙인 이름이다. 실존하지 않고 사피엔스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추상명사다. 사랑, 보람, 연민, 책임, 의무, 도덕, 윤리, 정의, ......


추상명사의 의미들은 원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헛 것을 찾느라 아까운 시간을, 귀중한 인생을 흘리고 있다.


오늘도 내게 남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다 또 하루가 간다.

송호해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집 떠나면 고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