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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02. 2021

광클의 시간

골프장 예약 스트레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자영업이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큰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 큰 이익을 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골프 관련 분야다. 골프장들이 만원사례다. 회원제 골프장이건 퍼블릭 골프장이건 마찬가지다. 골프 치기 좋은 시간을 예약하기가 엄청 힘들다. 예전에는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나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국내에 머물고, 해외에서 골프를 치며 노후를 보내던 사람들조차 귀국하니 전국의 골프장들이 만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골프장에서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젊은 사람들은 골프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워낙 많은 세상을 살고 있어 골프 같은 번거로운(?) 취미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베이비부머들이나 넷이 모여 골프를 열심히 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해외여행을 못 가는 베이비 부머들은 더욱 열심히 골프를 치고, 여유 있는 젊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못 가 골프를 치기 시작한 것 같다. 골프장이 붐비다 보니 스크린 골프장도 붐비고 연습장도 만원이고 골프 장비와 패션 분야까지 호황을 누리고 있다.


7월과 8월 한여름은 강원도 스키장 부근의 골프장들은 비교적 쾌적한 기온으로 성수기였지만 원래 한국에서 골프는 비수기였다.  30도가 넘는 더위에 땡볕을 걸어 다니며 운동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온갖 할인을 통하여 사람들을 불러들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작년 여름과 올여름은 넘쳐나는 골퍼들로 골프장들은 비명을 지를 판이다. 예전의 모든 할인은 싹 다 없어지고 세 명이 라운딩을 하면 오히려 그린피를 할증하는 골프장들이 생겼다. 심지어 그린피와 카트피를 올리는 골프장마저 있었다. 점점 부족해지는 캐디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캐디피도 올랐다.


골프장 예약을 부킹이라 하는데 부킹 하기가 전쟁이다. 부킹 방법과 일정은 골프장마다 다르다. 인터넷과 전화예약을 보통 병용하는데 지금은 인터넷이 대세다. 매일 아침 9시에 몇 주 후의 하루를, 매주 월요일 몇 주 후의 주 전체를, 또는 정해진 날 다음 달 전체를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는다. 주말 예약은 사람들이 더 몰려 따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하기도 하고 그동안 기회가 없던 회원에게 우선 배정하기도 한다. 주중 예약은 인터넷 클릭을 통하여 선착순으로 처리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 인터넷 서버가 다운되기도 한다. 광클(광속으로 하는 클릭)의 시간이다. 대학교에서 자신이 원하는 과목의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매 학기마다 학생들이 광클하느라 스트레스받는다고 한다. 그 광클이 골프장 부킹에서 매일 내지 매주 일어나고 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골프장은 두 번째 목요일 아침 9시에 다음 달 전체의 주중 예약을 인터넷으로 받는다. 예약일 며칠 전부터 함께 골프 치는 회원들끼리 다음 달 골프 치는 스케줄을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정하고 부킹 횟수가 일인당 월 2회로 제한되어 있기에 날짜를 분담한다. 분담한 날짜와 좋은 시간을 광클하지 못하면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기회를 날리는 것이라 긴장될 수밖에 없다. 1987년 박사학위 받고 난 이후로 경쟁이나 시험의 스트레스는 거의 잊고 살았다. 물론 기술사 시험이나 각종 운전면허시험(대형, 트레일러, 오토바이)을 쳤지만 떨어져도 다시 볼 기회가 얼마든지 있고, 꼭 붙어야 하는 시험도 아니고 나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 시험 보는 스트레스를 오히려 즐길 여유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골프장 부킹 스트레스는 엄청 심한 것이다. 부킹에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의 일정에 내가 구멍을 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성공했는데 나만 못하면 이도 창피한 노릇이다. 그래서 예약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장이 흥분한다. 펄떡거리는 심장과 함께 9시 정각의 초침에 맞춰 광클의 시간이 시작된다. 광클끼리 충돌하기도 하고 서버가 비명을 내지르다가(interal server error), 20초 내지 30초가 흐르면 부킹이 끝난다. 예약 가능 시간이 전부 없어지는 것이다. 클릭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이다.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의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모니터 뒤편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내 심장 역시 천천히 본래의 박동수로 돌아감을 느낀다.   


골프를 치는 중에 간혹 어르신들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생을 마감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골프를 치면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동작은 긴 드라이버를 치는 것도 아니고, 아이언이나 어프로치 하는 동작이 아니다.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하는 순간이다. 먼 거리 퍼팅은 원래 땡그랑 할 확률이 거의 없어 큰 부담 없지만, 승패가 걸린 1미터 내외의 짧은 퍼팅은 대부분의 골퍼가 스트레스받는다.(스트레스 안 받고 오히려 즐긴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주 독한(?) 사람이다.) 내기 골프에서는 퍼팅이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따라 몇천 원 또는 몇만 원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프로에서는 몇 억 원 내지 수십억 원이 오가기도 한다) 이런 짧은 퍼팅 스트레스받기 싫어 어르신이 된 나는 이즈음 골프 치며 내기를 안 한다. 내가 스트레스받기도 싫고 그런 스트레스 남에게 주기도 싫어서...


그런데 골프장 부킹 하다 컴퓨터 앞에서 심장마비 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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