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에 입원하는 4박 5일 전문치료형 금연캠프
금연캠프는 월요일 아침에 국립암센터 국가검진동 11층 입원실에 입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 전 날인 일요일 아침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캠프 한 기수의 참가인원은 15명이고 입원실은 한 방에 세 명씩이다. 4박 5일 동안 단 한 번의 산책을 제외하고는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교육을 받거나 상담을 위해 다른 층으로 이동할 때도 항상 인솔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절대 개별적인 이동이나 외부 출입은 안된다. 심지어 매일 밤 로비에서 불침번 서는 스태프 분도 있었다. 아주 전망 좋고, 시설 좋은 감옥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일정은 강의와 프로그램, 그리고 건강검진과 결과 상담 등으로 아주 빡빡하게 짜여 있다. 자유시간은 저녁 식후 프로그램이 끝나는 8시부터 자기 전, 그리고 조식 시간인 7시 반 이전뿐이다. 헐렁할 줄 알고 두 권 가져 가려다 무거워 한 권만 넣은 책은 반도 읽지 못했다. 지나고 나니 흡연욕구가 생길 시간을 주지 않고 혹여 생겨도 실행에 옮길 여유를 주지 않으려 의도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저녁 식후 프로그램은.
인생은 출생과 죽음 사이의 무수한 선택으로 구성되는데 캠프에서는 선택할 것이 없다. 내 인생이 30분 단위로 이미 다 정해져 있다. 망설이거나 결정 못할 선택이 없으니 뇌가 아주 한가하다. 오직 금연만을 생각할 뿐이다. 사실 금단 증상으로 멍한 것도 있다. 잠이 쏟아지는 분도 있었다.
금연캠프는 전문치료형이다. 전문치료란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의미한다.
약물치료는 최근 시판된 바레니클린(일명 챔픽스)을 복용하는 것이다. 8 주내지 12주를 복용해야 한다. 바레니클린은 뇌의 니코틴 수용체에 결합해 흡연 욕구를 떨어뜨려 금연을 도와주는 약물이다. 금단증상 및 흡연 갈망을 줄여 금연 효과가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다.
캠프 시작 열흘 전에 암센터를 방문하여 의사 선생님 처방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입소 전부터 복용 시작을 권한다. 캠프를 성공적으로 출소하고 나면 약 없이도 금연할 것 같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갈망을 이성으로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왜? 니코틴 중독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다. 바레니클린의 부작용은 구역감(식후 복용 권장), 수면장애, 이상한 꿈, 그리고 드물게 변비, 두통, 기분변화, 자살 생각이란다. 난 구역감은 없었지만 이상한 꿈과 수면장애는 있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꿈을 꿨다. 금연캠프 중에. 그리고 많은 꿈을 꿨다. 평소에는 거의 꿈을 기억 못 하는데.
니코틴의 중독성이 마리화나를 비롯한 웬만한 마약보다 세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의문이 들었다. 마약은 그렇게 생산, 유통, 사용을 엄벌하면서 왜 담배는 마약처럼 안 하는 걸까? 아마도 너무 오랜 역사로 인하여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문화는 아주 천천히 변한다. 지금 금연 문화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심리상담치료 8회기가 포함되어 있다. 칠팔 명을 동시에 하는 그룹 상담치료가 5회(1회가 두 시간)이고 3회의 개인 상담치료다. 4박 5일이라 입소 날과 출소 날까지 그룹 상담치료를 매일 받았다. 나이차도 좀 나고, 살아온 인생도 전혀 모르는 흡연자들의 그룹 상담치료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상담치료는 처음이었다. 비밀엄수 규칙이 있어 상담 내용을 소상히 밝힐 순 없지만 다양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오직 한 가지 목적 금연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 소설이란 생각이 더 분명해지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듯이 얘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함께 아쉬워했다.
모태신앙이니 모태솔로니 하는 말은 들어봤지만 '모태흡연'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시골에서 한 방에서 온 식구가 함께 자는데 아버지가 뻐끔뻐끔 담배 피우는 상황 속에 컸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이 만연한 사회인데, 학연, 혈연, 지연보다 더 끈끈한 것이 흡연이란 얘기에 모두 배꼽 잡았다. 흡연은 정말 끈끈하다. 그래서 금연이 힘든 것이다.
캠프 입소 직후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본격적인 건강검진이 있었다. 저선량 폐 CT와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와 동맥경화 검사 결과를 4일 차에 의사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다. CT 결과지에는 폐기종(폐조직이 파괴된 상태로 공기 흐름이 막힌 것) 위치와 크기를 빨간색으로 표시한 그림과 폐기종 부피 % 값이 있었다. 공해와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폐기종의 90% 이상이 흡연이 원인이다. 참가자 대부분 이미 폐기종을 갖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폐기종은 결국 COPD(만성 폐쇄성 폐질환)로 진행되는 것이고 치료할 수 없는 것이라 금연과 깨끗한 공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매년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폐 CT 검사를 하고 결과지의 '특이증상 없음'이란 말만 믿고 담배 더 피워도 되겠구나 했는데 이미 폐기종이 있다는 결과를 받고 나니 금연해야겠단 의지가 생겼다.
니코틴은 식욕을 억제하고 기초대사량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어 금연을 하면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 그리고 금연을 하면 후각과 미각이 회복되어 식욕이 증가하고 담배 대신 간식을 찾는 빈도가 증가한다. 따라서 금연 후에는 식사관리가 중요하다. 골고루 다양하게 채소를 늘리고 탄수화물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의 요가 시간이 있었는데 내 몸이 내 몸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뻣뻣할 수가 없다. 가동 범위가 한심한 수준이다. 저녁 식후 프로그램으로 금연을 위한 음악치료 시간이 있었다. 난생처음 받는 음악치료 시간도 힐링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금연을 위한 구강관리 특강도 좋았는데 베프인 치과의사 친구한테서도 들을 수 없는 중요한 팁을 여러 개 들었다. 검지 손가락 마디 길이(어금니 두 개를 동시에 닦을 수 있는 정도만)의 짧은 머리 칫솔을 선택하고, 치약은 완두콩만큼만 짜고, 물 묻히지 말고 하라는 것 등...
상담치료의 마지막은 금연 후원자에게 편지 쓰기였다. 4박 5일 캠프를 마치며 금연 결심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는 시간이다. 아내에게 쓰신 분도 있고, 담배에게 쓴 분도 있고, 자신에게 써서 각오를 다진 분도 있었다. 난 아들에게 썼다.
아들 우석아!
담배 참 맛있지. 나도 동감해.
담배 끊기가 쉽다고 생각하지?
너도 작년인가 재작년에 약 먹으며 세 달 정도 끊었던 것 알고 있어.
나도 여태껏 세 번 정도 끊었던 것 같아.
그런데 결국은 다시 피게 되더라고.
이번에는 정말 끊을 거야.
내 몸이 힘들어해서 더 이상은 아니 것 같아.
아빠 꿈이 뭔지 알지?
'우아한 노인' 그래서 더욱 이번에는 끊을 거야.
내 금연에 가장 걸림돌이 너야.
너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이 좋은데...
너와 함께 있을 때 항상 함께 담배 피웠잖아.
너도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하지는 않겠어.
그렇지만 내 금연을 도와줘!!!
금연을 각오하는 카드도 만들었다. 기억나는 것은 '내 사전에 담배는 없다.' 그리고 취미가 나비 사진 찍기란 분은 '나비는 다 봐야지'가 기억에 남는다. 아이폰 뒷면에 넣은 내 카드는
“우아한 어르신이 담배를?”
감사의 글: 2022년도 14기 금연캠프를 우아하게 운영하신 경기북부금연지원센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과 응원으로 금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