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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07. 2023

Decision to leave

헤어질 결심

좋은 영화 한 편이 좋은 소설 하나 읽는 것만큼이나 감동을 준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화면을 터치했다. 쿠알라룸푸르 가는 비행기 안에서...

6시간 40분의 비행시간을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사랑의 조건'이란 책을 갖고 탔지만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읽기 싫었다. 오래된 에어버스 A330 비행기 좌석 앞 화면은 작고 어두웠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비행기 안에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다. 그리고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는 사람이 난 아니다.


날개 뒤 꼬리 쪽 좌석은 시끄럽다. 소음 속에서 엉성한 헤드폰을 끼고 어둡고 작은 화면으로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무슨 외국 영화제에서 뭔 상을 수상한 영화이고 최근에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영화다. (?) 영화제에서 아쉽게도 결국 (?)상을 받지 못했다는 기사를 몇 번이나 접했던 기억이 난다. 재미있는 대사가 들리기도 했으나 전반적인 배경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해를 못 했다. 작고 어두운 화면, 시끄러운 소음, 그리고 낮은 기압과 피곤함 속에서...


"주말 부부 열 쌍 중 여섯이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는데 괜찮냐고."

"섹스리스 부부 중에 55%가 이혼한다는데 괜찮냐고."

사실일까? 시나리오 작가는 이 대사를 어디서 찾았을까 궁금했다. 근거가 있냐고?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이 대사가 좋았다. 특히 탕웨이의 어색한 발음이 더 내 마음에 와닿았다. 시간적으로 엇갈리는 사랑은 비극이다.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짠함이 있다. 진부한 희극보다 슬픈 비극에 호모 사피엔스의 마음이 동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자막을 한국어로 넣고 읽으면서 보았다.


서래의 꼿꼿한 자세에 반했다는 해준에게 묻고 싶었다.

'담배피며 요리하는 여자, 침대에 앉아 담배 피우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냐고?'

꼿꼿한 실루엣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제법 많은데...


모든 영화는 배우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탕웨이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어르신이지만 나도 남자라... 누구는 탕웨이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 때문에 영화가 탐탁지 않았다는데 나는 그 부분이 더 좋았다. 탕웨이의 속마음을 확실하게 읽기가 힘든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왜 이 영화가 외국의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지 못했는지 난 안다. 한국말이 어색한 미모의 중국 여인이 주는 신비함이 자막처리로 결코 보일 수 없다. 오직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다. 외국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완벽한 한국말과 어색한 한국말의 미묘한 차이를 자막으로 결코 느낄 수 없다.


일주일 후 귀국 편에서 다시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거의 자정에 출발하는 항공편이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잠들었지만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꿈꾸며 잔 것 같다. 내게 여운을 많이 남긴 영화였다. 영화 각본을 읽고, 대형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는 것은 특히 어르신에게 좋은 일이다.


꼭 완벽한 소통을 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수많은 국제결혼들이 완벽한 소통 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피에 언어가 다른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남아 있다는 것이 발견되어 많은 학자들이 놀랬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불륜이지만 불륜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사랑이라고만 느꼈다. 무려 세 번이나 보면서도... 아마도 주인공 남녀의 키스나 정사 장면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불륜에도 정신적 불륜과 육체적 불륜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서래의 어색한 한국말로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사랑하기를 중단합니까?" 하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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