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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23. 2023

사모곡


그런 말 있다.

“사랑을 책으로만 배워 사랑에 실패했다고…“

예전에는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책부터 샀다. 테니스도 그랬고, 골프도 그랬고, 일본어도 그랬고, 오토바이도 그랬고, 심지어 인생도 그랬다. 그래서 어마무시하게 많은 책을 샀다. 그 책들이 내 방을 꽉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즈음 젊은 세대들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찾는다. 모든 것을 잘 정리하여 시범을 보이니 눈과 귀로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읽기만을 통하여 체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쉽다.  


배드민턴을 열심히 치면서 배드민턴 관련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많은 배드민턴 코치들이 유튜버를 겸업하고 있다. 아주 열심히 상세하게 온갖 기술을 설명하며 시범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어르신인 나의 체력이 형편없고 움직임도 둔해져, 머리로 충분히 이해한 것을 몸으로 재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배드민턴 규칙과 기술을 어느 정도 체득하고 나니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복식경기는 공이 너무 빨라 정신이 없다. 아무리 거실의 큰 화면으로 보아도 오고 가는 셔틀콕을 눈으로 쫓아가기 힘들다. 그에 비해 단식경기는 훨씬 보기 편하다.


중국의 린단과 말레이시아의 리총웨이의 경기를 거의 모두 섭렵하고 나서 여자 선수들의 경기 영상도 찾아보게 되었다. 많은 남녀 단식 선수들의 영상을 보다 보니 우리나라의 안세영선수뿐 아니라 전 세계의 웬만한 단식 선수를 거의 다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남녀 단식 선수의 세계랭킹의 변동까지도 따라가고 있다.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젊은 신인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당연한 흐름도 보인다. 그래도 배드민턴 선수들의 수명은 긴 편이다. 10년 이상 선수로 뛰다가 은퇴한다.


여자 단식경기를 보다가 한 여자 선수에 유독 눈길이 간다. 아니 꽂혔다고 봐야 한다.


라챠녹 인타논이다. 인타논은 태국 북부 치앙마이 부근에 있는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인타논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나 한라산에 해당하는 태국의 산 이름이다. 치앙마이를 여행하며 인타논이란 명칭에 익숙해서였을까? 아니다. 경기하는 모습에 꽂힌 다음에 그녀의 이름을 찾고 그녀에 대한 정보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았다.


169센티미터의 키에 슬림한 몸매를 갖고 있는 그녀는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과 약간 튀어나온 입을 갖고 있다. 태국의 소수민족 출신이라는데 한 때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스텝 밟는 것이 아주 우아하고, 특히 크로스 헤어핀에 능하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두손을 합장하며 불교식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보기 좋다.


1972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갸름한 얼굴과 약간 튀어나온 입을 갖고 있었다. 신장염을 진단받고 3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중학교에 입학한 해 여름이었다. 여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안방에 누워계셨다. 시원한 방바닥에 함께 누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그 당시 공부를 잘했다. 공부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 1등을 다투는 경쟁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아픈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라챠녹 인타논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왠지 익숙한, 왠지 친근한 그래서 그녀의 경기 모습이 왠지 좋았다. 다리가 아주 튼튼한 일본의 아카네 야마구치나 건장한 체구의 스페인의 캐롤리나 마린에 비해 그녀의 신체는 가냘프다. 빠르고 우아한 발놀림으로 여자 단식 세계 랭킹 1위에 태국선수로는 처음 올랐단다.


책들의 속표지에 많은 저자들이 자신의 책을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쓴다. 가장 가까운 친족이 어머니다. 아버지도 있지만 저자들을 키워낸 것은 대부분 어머니다. 결핍! 어린 시절의 결핍의 기억은 평생 지속된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평생 낫지 않는 내상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태어난 수많은 동물들 중에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새끼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인간사회가 아프리카 사바나보다는 안전하기에 어르신이 되도록 생존했지만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가끔 궁금하다.

https://youtu.be/fdLZO-OOx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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