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도 노화한다.
내 친구 중에는 가끔 화를 잘 내는 친구가 있다.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어찌 생각하면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내재된 공격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호모 사피엔스가 공격성을 갖고 있다. 십 년이 넘는 학교 교육과 수십 년 이상 사회생활하면서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 봤자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많은 호모 사피엔스들이 공격성을 감추고 얌전하고 매너 있게 행동한다.
사회에서 어울리다 보면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지만... 남의 의견을 듣는 것에는 별 관심 없고, 남의 처지나 입장을 생각지도 못하면서 자기 생각만을 강하게 우기는 것도 유전자에 내재된 공격성 때문 아닐까?
파킨슨병은 뇌가 충분한 도파민을 생산하지 못할 때 생긴다. 이 병은 기이한 증상들을 수반하는데, 이 증상들은 환자들에게 골고루 분포한다. 어떤 환자도 이 증상들을 모두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것들은 '운동장애'라고 분류할 수 있는데, 마비처럼 몸이 뻣뻣해지거나, 몸을 떨기도 하고, 때로는 간질발작처럼 과장된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불면증이나 우울, 갑작스럽게 화내기처럼 신체의 움직임과 관련 없는 증상들도 있다.
- 마이클 킨슬리의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 p.87 -
마이클 킨슬리는 42세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20여 년간 남들보다 먼저 늙어보았다. 저자는 현대 의학으로 밝혀진 파킨슨병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 50세 때 주변에 자신의 병을 알리고 현직에서는 은퇴했지만 그 이듬해 결혼해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여생을 살고 있다.
마이클 킨슬리가 언급한 파킨슨병의 증상 중에서 내 눈길을 끄는 것은 '갑작스럽게 화내기"이다. 제법 오래 살다 보니 가끔 갑작스럽게 화내는 사람을 마주칠 일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그렇게 불같이 화낼 일이 아닌데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나? 아니면 이즈음 너무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 생존이 위태로워진 것일까? 왜 저렇게 화내는 것일까 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혹시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하는 것 아닐까?
뇌가 노화하고 있는 중이라 도파민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사람이 나이가 들면 두 가지 부류로 늙어간다고 어디서 읽었다.
한 부류는 아주 조용한 노인네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어르신이다. 물으면 차분하게 조곤조곤 설명할 뿐 결코 먼저 말하지 않는다.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젊고 혈기 왕성한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처지가 전혀 다르다. 처지가 다르기에 눈앞에 놓인 상황을 대처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대하는 세상과 미래가 없는 어르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씨족이나 부족을 이루고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나이 들면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주먹이 앞서고 항상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늙었다면 조용히 지내야 한다.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닥쳐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모든 구성원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생산성이 없고 전투력 없는 노인네와 결국은 살아남지 못할 젖먹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이웃마을과 전쟁을 치러서라도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부족의 몰락이다.
또 한 부류는 아주 성질 고약한 노인네다. 힘과 권력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대단한 힘과 권력을 가지지는 못했더라도 조직(회사, 공무원, 학교, 군대 등등...)에 몸 담았던 사람들은 계급의 피라미드 속에서 최소한 중간은 맛보았을 것이다. 아랫사람이 있었다면 상급자이고, 신입이 아니라면 당연히 권력이란 것을 누려봤다. 모든 조직에는 구조적 폭력성이 있다. 심지어 교회나 학교 같은 조직에도 말이다.( https://brunch.co.kr/@jkyoon/122 ) 신체적 노화로 근력(힘)을 잃었고, 조직에서 은퇴하여 권력도 잃었다. 소위 "나 때는 말이야..." 하는 꼰대들이 나이 들면 고약한 노인네가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지금 모든 것이 불만스럽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것이다. 내 인생이 억울하다. 그동안 나름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는데... 어디 가서 내 인생을 보상받고 싶지만 보상해 줄 주체가 없다. 조상이나 신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국가가, 정부가, 국회가, 대통령이 모두 원망스럽고 한심하다. 모든 일에 화가 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불만스럽다. 그리고 심지어 생존의 위협(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을 느끼고 있다. 자주 화를 내는 성질 고약한 노인네는 여기서 부딪히고 저기서 부딪히다가 결국은 말할 기력마저 쇠잔해져 조용해진다.
조용하거나 성질 고약하거나 둘 중 하나란다. 중간은 없다는 것이다.(예쁜 치매 거나 폭력적 치매 거나...)
파킨슨이건 알츠하이머건 모두 뇌가 노화되어 발현하는 증상이다. 신체의 모든 부분(근육, 혈관, 뼈 및 장기)이 노화되듯 뇌도 노화한다. 뇌의 도파민부족은 파킨슨병이고, 베타 아밀로이드란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한다. 모두 뇌가 노화하는 과정이다. 노화는 10대 후반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다. 진행된 노화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병이 된다. 언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느냐와 얼마나 빨리 노화가 진행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시기와 속도가 사람마다 좀 다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병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가족력이란 것이 자주 언급된다. 가족력이란 유전자를 공유함을 의미한다. 부모와는 유전자의 반을 공유하고, 조부모와는 1/4을 공유한다. 아버지가 파킨슨병을 앓았다면 아들이 파킨슨병을 앓을 확률은 반 이상이다. 아버지는 파킨슨병을 앓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아 파킨슨병을 앓을 확률이 높다. 가족력이 큰 요인이라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예전보다 너무 오래 살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던 때의 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현대인의 뇌를 너무 오래 사용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나이 들면 상처가 나도 빨리 아물지 않는다. 세포의 재생능력도 노화되어 오래 걸린다. 관절부위가 어느 날 갑자기 불편해진다. 자연치유의 시간도 보통 몇 년 걸린다. 다행히 치유되어도 이제는 멀쩡하던 다른 부위가 불편해진다. 허리가 아프고 목이 잘 돌아가지 않고 어깨부위가 팔꿈치가 손목과 발목이 심지어 손가락도 아파온다. 그렇게 관절염은 온몸을 순환하다가 결국은 멈춘다. 마침내 숨이 멎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