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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24. 2023

살아만 있으면 안심!


눈이 노화하고 있다.


아버지는 황반변성으로 10년 정도 고생하시다가 94세에 돌아가셨다. 황반변성은 망막의 가장 중심부인 황반에 문제가 생겨 시력이 떨어지고 상이 왜곡돼 보이는 병인데, 대부분 노화에 의한 것이다. 2년 전에 왼쪽 눈에 비문증이 생겨 안과를 찾았다가, 이도 어쩔 수 없는 노화현상이고 시력에는 문제를 주지 않으니 그냥 살라는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2년 만에 안과검진을 받았다. 안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훨씬 많다.


1.0과 0.8이던 시력이 0.9와 0.7로 떨어졌다. 백내장끼가 좀 있지만 아직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니 일단 1년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 확실히 이즈음 눈이 뻑뻑한 경우(노화에 의한 안구건조증)도 있고 시력이 떨어진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골프를 칠 때 드라이버를 치면 내 볼은 잘 맞으면 200야드 정도 날아가는데, 마지막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을 자주 놓친다.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내 시력은 양안 모두 1.2였다.


드라이버로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잘 보내면 아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내 볼이 어디로 갔는지 잘 못 본다. 이런 경우가 예전보다 자주 있다. 그날도 슬라이스가 나면서 볼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시력이 안 좋은 골퍼들은 이런 경우에 치고 나서 바로 캐디를 돌아본다.


"내 볼 보셨나요? 살았을까? 죽지는 않았겠지요?"

캐디의 대답이 걸작이다.

"글쎄요. 골프공과 아들은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데 가봐야겠지요."

가봐야 안다는 말은 50:50이란 얘기다. 근데 아들이 왜 거기서 나오나?


많은 아들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한다. 경제적인 독립뿐 아니라 부모의 잔소리로부터 독립하고 싶다. 나도 그랬다. 아들이 먼저 내게 전화하는 경우 거의 없다. 꼭 확인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만 전화한다. 그마저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한다. 따로 살고 있는 아들이 잘 살고 있는지 모든 부모가 궁금하다. 그렇지만 아들이 싫어할까 봐 잘 살고 있느냐고 묻기 위해 전화를 못한다. 아들과의 통화는 거의 용건만 간단히. 전화하기도 망설여지고 혹시라도 통화가 연결돼도 금세 끝난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아닌 것 같다. 살아 있기만 하면 다행이라니...


"다행이네요. 공이 잘 살아 있네요." 캐디가 내 볼을 찾았다. 숲으로 들어갔지만 볼은 살아 있다. 그린 방향으로 칠 수는 없지만 옆으로 나오는 스윙은 가능하다. 페어웨이로 레이업 하고 나서 캐디에게 물었다.

"아들은 살아만 있어도 안심이라면, 딸은?"

이 대답도 걸작이다. 캐디가 웃으면 하는 말이.

"딸은 눈에 보여야 한대요. 주변에 계속 눈에 띄어야 안심이라네요."


아들은 살아만 있으면 되니까 자꾸 전화해서 잘 있냐고 묻지 말고, 딸은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속담(?)이 기억난다. '사기그릇과 딸은 밖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그릇을 밖으로 돌린다는 말은 이웃집에 빌려주는 것을 뜻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은 깨진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딸은 집안에 잘 가두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기그릇처럼 잘못될 수 있단 의미로 이해했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의 유물이다.

아직도 많은 딸들이 이러한 차별에 분개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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