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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20. 2016

카파도키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이방인임을 즐기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중심 '괴레메'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카이세리 버스터미날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카이세리에서 괴레메는 승용차로 한시간여 걸리는 65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택시를 대절해도 될만한 거리지만 저는 급할 것이 없기에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택시로 만원정도 주고 도착한 버스터미날은 아주 근사했습니다. 카이세리가 터키에서 9번째로 큰 도시라는데 버스터미날이 새로 지은 국제공항 청사만큼 근사합니다. 붐비지 않고 깨끗한 벤츠 새 버스들이 즐비합니다. 오전 11시에 도착했는데 괴레메가는 버스는 오후 두시랍니다. 미니버스는 지금 탈 수 있습니다. 세시간을 기다릴 것이냐? 미니버스를 타고 갈 것이냐? 선택은 저의 몫입니다.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터키는 참 신기한 나라입니다. 히잡이나 부르카를 뒤집어 쓴 여인들도 자주 보이지만 화장과 매니큐어 등으로 한껏 멋을 부린 여인들도 자주 눈에 뜨입니다. 서구 유럽문명과 중동 이슬람문명의 경계에 있지만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에 사회체제면에서는 자본주의인 서구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국민소득도 이제는 만불이 넘어 서구 유럽문명의 공동체인 EU에 가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길에 다니는 자동차들의 상태를 보면 그 나라의 국민소득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최신형 폭스바겐이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보다 경제사정은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엊그제 발생한 쿠데타나 쿠데타 진압 이후의 현 대통령의 복수를 보면 결코 안정될 수 없는 나라가 아닌가하는 의문도 듭니다. 그리고 지금 터키에 머무르고 있는 30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들도 결국은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난민들을 잘 붙들고 있으라고 EU가 지원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터키사람들은 무뚝뚝 하지만 대부분 친절합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우정(friendship)의 나라라고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터키사람들 중에 다혈질인 사람들이 우리나라 만큼이나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6시간 만에 진압된 쿠데타 이후 5일이나 지났는데도 밤이면 터키국기를 흔들며 자동차의 경적을 요란하게 내면서 길거리를 방황하는 차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꼭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에서 '대한민국'을 소리높이 외치다가 경기가 없는 날에도 아무데서나 응원가를 외치고 한동안 그 여운을 즐기던 한국국민 같습니다. 그런 흥분상태를 즐기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터미날이 너무 근사하여 세시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오늘 내가 꼭 해야하는 일정이라곤 괴레메로 이동하는 것 뿐입니다. 여유가 되면 내일이나 모레의 열기구탑승을 알아보는 것 뿐입니다. 만약 이 버스터미날이 덥고 복잡하고 온갖 삐끼와 사기꾼들이 설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서둘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깨끗하고 여유있는 공간은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의 책도 집중하여 두 chapter 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배낭 메고 다니는 사람도 저 말고는 안보입니다. 터키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흘긋흘긋 저를 쳐다 보는 눈길이 느껴집니다. 터미날 곳곳에 켜진 TV 에서는 쿠데타 진압과정의 영상이 끊임없이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이 생각납니다. 이 곳 터키의 외딴 곳에 떨어진 이방인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꿈은 소원성취의 기능이 있다고 좀 전에 읽은 프로이트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꿈에 대해 갖고 있는 좋은 표현들... 꿈에 그리다. 꿈꾸듯이 아름답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등등을 보면... 지금 나는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터키인들만 사는 혹성에 불시착하여 터키인들의 눈길을 받으며 나는 이방인이거나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터키인들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 속에 긴급한 용무없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나는 '신'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세계를 호기심에 방문한 '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전지전능이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과 영생하는 것이 같은 것 아닌가요?

괴레메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별 생각을 다해봅니다.

비행기 좌석 같은 벤츠 고속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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