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l 21. 2016

괴레메가 아닌 우치사르...

인생이 항상 좋을수는 없다.


우치사르 카야 호텔에 7시가 다되어 첵인했다. 오늘은 이것 저것 꼬이는 날이었다. 카이세리 버스터미날에서 우아한 세시간의 기다림 끝에 올라탄 고속버스는 신형 벤츠였다. 우리의 우등고속처럼 2+1으로 좌석이 배열되어 있고 저가항공이 아닌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눈 앞에 큼지막한 모니터도 있다.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고 영화도 상영한다. 남자 승무원이 커피뿐 아니라 각종 음료수와 스낵을 주는 카트도 끌고 다닌다. 내 평생 타본 고속버스 중에는 가장 고급서비스였다. 거의 고속도로수준인 국도에 들어섰다. 지도상으로 보면 괴레메는 큰 길에서 12km 정도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약간의 우려를 했다. 고속버스는 괴뢰메로 꺽어지는 Avanos란 마을의 정거장에 한시간도 안걸려 도착하더니 나만 내리란다. 알고보니 그 버스는 괴레메가 종착지가 아니고 훨씬 더 멀리가는 버스였다. 버스 승무원이 정류장의 직원에게 나를 넘겼다. 직원은 내가 서서 기다려야 할 장소를 가르쳐주며 10분을 기다리란다. 미니버스가 올꺼라고... 결국 미니버스를 타고 괴레메에 도착했다. 카이세리에서 바로 미니버스 탔으면 이렇게 갈아타지도 않고 한시간만에 왔을텐데..

괴레메는 아주 작은 관광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경찰인지 군인인지 모르겠는 권총 찬 친구들이 버스 승객을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며 검문한다. 아마도 쿠데타 잔당을 잡거나 관광객대상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란 상상을 한다. 특별히 정류장이 있는 것도 아닌 괴레메 제일 중심에 내려준다. 심호흡 한번 하고 배낭끈을 조이며 어제 밤에 예약한 호텔을 향하여 약 900m를 걷기로 한다. 그런데 바로 Korean restaurant 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우 예!!"하며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터키에 도착하여 이미 다섯밤을 잤지만 아직 김치를 구경 못했다. 터키에 도착한 첫 날 밤에 오뚜기 쌀떡국이 마지막 한식이었다. 건물 2층에 Evileye란 한국식당으로 올라 갔다. 시간이 오후 네시라 그런지 주인 처녀(?) 외에는 아무도 없다. 신라면+밥한공기+반찬5가지 25리라가 눈에 쏙 들어온다. 라면국물에 밥 한공기 말아서 게눈 감추듯 흡입(!)했다. 작년에는 정말 한국관광객 많았는데 올해는 테러와 쿠데타때문에 정말 없단다. 괴레메에 한식당이 두곳이나 있는데... 미안한 마음에 맥주를 두병이나 마셨다. 괴레메에서의 3일이 아주 쾌적할 것 같았다.

어제 저녁에 부킹닷컴에서 괴레메의 호텔을 찾다 환불불가로 카야호텔을 무려 3박이나 예약했다. 혹시 호텔에서 픽업해줄 수 있냐고 구글맵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는데 호텔이 전화를 안받는다. 어이없어하며 한 열번은 시도한 것 같다. 환불불가라며 어제밤 스마트폰이 띵똥하며 내 돈도 가져갔다. 혹시 어제 내 돈 챙기고 호텔이 문닫고 도망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킹닷컴이 그러면 배상해주겠지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맥주를 두병이나 마신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호텔을 찾아갔다. 우려한 대로 문제가 있었다. 오늘부터 호텔이 문을 닫는단다. 쿠데타때문에 문을 닫는다지만 결국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는 것이다. 아니 내가 어제 저녁에 예약했는데... 그대신 괴레메에서 6km 떨어진 우치사르에 있는 카야호텔로 모실 수 있단다. 어이가 없어 항의를 하려다 참았다. 오늘 갑자기 호텔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친구는 오늘 직업을 잃었다. 지금의 터키 상황을 보면 유사한 직업을 찾을 가능성은 제로다. 실직자가 된 친구에게 무슨 불평을 쏟는단 말인가? 나야 환불 받고 다른 호텔을 찾아가도 되는데... 우치사르는 괴레메를 찾은 거의 모든 관광객이 보고가는 곳이다. 괴레메는 계곡에 있지만 우치사르는 훨씬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전망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쉬움이라면 한국음식점에서도 6km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치사르카야호텔을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호텔을 새로 찾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 두번째로 넘겨졌다. 우치사르호텔에 저녁이 다되어 첵인했다. 1964년에 이 일대에서 처음으로 바위를 통째로 깍아 호텔을 만들었단다. 모든 벽이 화산암 한덩어리인 것으로 보아 동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호텔의 시설은 아주 완벽했다. 아침조식이 원래 포함되지 않은 예약이었는데 내가 호텔도 옮겼으니 조식을 포함해 달라고 우겨보기도 했다. 조식부페가 우리돈으로 만원이 안된다. 그러나 별네개 호텔에서 3만여원에 자면서 너무 무리한 요구라 나도 생각했다. 뜨거운 해가 진뒤에 내일 아침거리를 사기위해 거리로 나갔다. 1리터짜리 오렌지쥬스 1, 복숭아 3, 토마토 2 그리고 큰 빵을 하나 샀는데 4000원도 안된다. 관광객으로 붐벼야 할 거리가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아주 괴괴하다. 터키의 관광업 종사자들은 올 여름시즌을 우울하게 보낼 것 같다.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터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테니... 호텔방의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뿌듯해 하는 내가 왠지 미안하다.

낼 아침거리 사러가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카파도키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