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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27. 2023

엄청 짜릿한 샤워를 위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너 헤어 & 버네사 우즈)


인간 옆에서 가장 번성한 가축은 개다. 개체수로야 닭이 일등이지만 대우면에서 개가 일등이다.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도 개다. 현대화되고, 집중된 사회에서 개는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로 대우받는다. 무한 경쟁이란 판을 깔아놓은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반려동물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희한하지 않은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을 살아내면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며 그렇게 시간과 돈을 쓰다니...


개를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공을 던진다. 개는 무조건 공을 쫓아가서 물고 온다. 다시 공을 던진다. 개가 물어온다. 다시 공을 던진다. 또 개가 물어온다. 던질 힘이 떨어질 때까지 무한반복을 한다 해도 개는 물어올 것 같다. 공을 던지고 물어오는 행위를 개는 자기와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기는 것이라곤 주인이 쓰다듬어 주거나, 간식을 주거나,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는 것뿐인데...


아침마다 동호회에서 배드민턴을 친다. 배드민턴은 매우 격렬한 운동이다. 어르신이 하기에는 벅찬 운동이다. 내 주변에는 이미 배드민턴을 칠 기력이 없거나, 무릎이나 발목이 망가져 걷는 운동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땀을 내고 샤워하는 맛에 중독되었다. 아침을 먹고, 이를 닦고,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친다. 그리고 엄청나게 짜릿한 샤워를 한다.


조깅이나 헬스와는 달리 배드민턴은 꼭 넷(셋도 안되고 다섯도 안된다)이 모여 복식게임을 한다. 오전 두 시간을 부지런히 넷을 만들어 열심히 게임을 한다. 내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개가 던져진 공을 열심히 쫓아가 물어오듯이, 열심히 셔틀콕을 쫓아가 상대편 코트로 죽어라고 쳐 넘긴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아침마다 배드민턴 동호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각은 똑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죽어라고 셔틀콕을 쫓다가 땀으로 범벅된 몸을 씻어내는 쾌감을 즐기기 위함이다. 그 쾌락에 중독된 것이다. 누구와 편을 먹고 누구를 상대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개가 던져진 공의 색깔이나 크기에 괘념치 않듯이...


개 입장에서 이왕이면 물어오기 좋은 크기나 물고 싶은 색깔이 있을 수 있듯이, 복식게임을 함께하면 좋은 사람들의 힘과 수준은 있다. 넷의 실력이 엇비슷할 때 게임이 가장 치열하고 재미있다. 듀스에 듀스를 반복하는 게임이 보기에도 재미있고, 하기에도 짜릿하다.


늑대가 개가 된 것은 사람들이 늑대를 잡아 길들여서가 아니고, 다정한 늑대들이 사람들의 무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사람들의 무리 주변에는 사람들의 배설물 똥이 있었다. 잡식성인 배고픈 늑대가 먹을만했다. 그렇게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다정한 늑대들을 향하여 사람들이 먹다 남은 것을 던져주면서 늑대가 가축인 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늑대는 청각과 후각이 엄청 좋아, 가축인 개가 되어 사람과 붙어살면서 사람들은 불침번 효과를 톡톡히 보았고, 사냥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일 년 하고도 반년을 동호회에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들고나는 것도 보인다. 한 달 정도 보이다가 안 보이는 사람도 있고, 몇 달을 보이다가 없어지는 사람도 있고, 몇 달을 안 보이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도 먼저 자리 잡고 있다가 갑자기 다른 클럽으로 떠난 사람도 있다. 들고나는 사람 중에는 배드민턴 초보도 있고, A조나 B조 수준의 실력자도 있다. 나름 다 이유가 있겠지만 배드민턴의 재미를 느끼는 문턱(threshold)을 넘지 못했거나, 실력이 비슷한 사람이 동호회에 부족하거나, 매일 보기는 불편(?)한 사람이 있거나...


배드민턴을 배워보겠다고 신입이 들어오면 레슨코치선생님이 항상 같은 당부를 한다. 그대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요지는 이렇다. '동호회 회원들은 다들 자기 게임하느라 바빠서 아무도 당신을 챙겨주지 않습니다. 난타라도 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부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동호회에 적응하고, 실력도 늘어야 사람들과 게임을 하며 배드민턴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자기 가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정한 늑대처럼...


가축은 무리를 떠나 살 수가 없다. 무리에 적응하려면 다정해야 한다. 무리에 어울려 사는 모든 호모 사피엔스가 다정하다. 교육과 사회경험을 통하여 자기가축화했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혼자 사는 자연인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동호회 시간(10:00~11:50) 전에 일찍 도착하여 몸 풀고 있다 보면, 하나 둘 회원들이 체육관에 입장한다. 다정한 회원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다정한 회원과 난타로 몸 풀고 빨리 함께 게임해야 한다.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게임을 하기 위해 체육관에 온 것이다. 덜 다정한 회원을 보면 덜 반가운 것도 당연한 이치다.


다정한 회원은 바쁘다. 서로 게임하자고 불려 나가느라 숨 돌릴 틈이 없다.


그렇다면 난 다정한 회원인가? 덜 다정한 회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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