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과 공격성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공격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십만 년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격성이 필수다.
'최상의 수비가 공격'이란 말은 진리다.
평화시에는 잠재되어 있던 공격성이 전쟁이 나면 무섭게 발현된다. 전쟁은 생존의 문제다. 생존하기 위해 동물은 무슨 짓이든 한다. 심지어 복수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감히 상상 못 할 짓도 한다. 홀로코스트니 제노사이드니 하는 수많은 대량 살육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공격성을 내보일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온갖 스포츠가 번성하는 것은 공격성 때문이다. 모든 스포츠 경기에 사람들이 열심이고, 우리 편(?) 응원에 진심인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공격성을 순하게 발현하는 현상이다.
작년부터 아침 운동으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데, 게임에 열심이고, 이기고 지는 것에 진심인 것도 공격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공격성이 남성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여성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배드민턴 동호회원의 2/3가 여성이다. 여성회원들과 어울려 복식경기를 하며 몸소 체험한 것이다.
좀비 영화가 최소한 평타 이상의 흥행을 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인간의 공격성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어느 심리학자가 설명했다. 좀비는 다시 인간이 될 수 없다. 좀비를 박멸해야 할 기생충이나 바퀴벌레로 간주하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좀비 때려죽이는 장면으로 채워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이유가 공격성 때문이란다. 좀비 영화가 보기 싫은 것은 내 공격성이 평균 이하라 그런지 모르겠다.
이즈음 사회적 문제가 된 학교 폭력도 내재된 공격성 때문 아닐까? 학교 폭력이 최근에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륙십 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있었다. 학교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있어온 것이다. 너무나 오랜 평화기간(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다운 전쟁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뿐이었다고...)을 살다 보니 지금에서야 문제가 된 것이다. 군대 내 폭력이나 직장 내 갑질이나 언어폭력 모두가 유전자에 내재된 공격성 때문이다.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다. 선한 마음도 누구나 갖고 있다. 이타성 역시 유전자에 내재된 것이다. 털끝만큼의 선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을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배드민턴을 1년 반 가까이 치면서 느낀 것이다.
1. Deception skill에 당하면 유독 분하다.
Deception은 우리말로는 속임수, 기만, 사기를 뜻한다. 몸과 눈은 오른쪽을 향하면서 셔틀콕을 왼쪽으로 친다든지, 강한 점프 스매싱 동작을 하면서 아주 짧은 드롭을 놓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강하고 빠른 속도에 의한 득점이 아니라 상대방의 허를 찔러 득점하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에 애써 초연한 척 하지만, 이런 속임수에 당해 점수를 주면 나도 모르게 '에이씨'가 튀어나온다. 이런 속임수, 기만, 사기(?)는 순전히 게임을 이기기 위한 것이다. 배드민턴을 잘 치기 위해서는 이런 속임수에 능해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하다.
2. 강하게 스매싱이나 네트킬을 해봤자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안 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을 다해 스매싱을 하는 것은 내재된 공격성 때문이다. 최근 레슨 받으며 배운 것이 드라이브, 드롭, 그리고 스매싱을 연속 동작으로 하는 것이다. 소위 '강약강'인데 실제 게임에 들어서면 잘 안된다. 특히 약이 잘 안 된다. 그냥 강강강이 되기 쉽다. '못 먹어도 고'라고 강한 드라이브를 서로 주고받는 맞드라이브가 보통이다. 나보다 강한 상대와 맞드라이브를 해서 점수 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리와 몸이 따로 작동함을 느낀다.
3. 포핸드 푸시보다 백핸드 푸시가 통했을 때 더 통쾌함을 느낀다.
포핸드 스매싱과 백핸드 스매싱 중 어느 것이 더 통쾌할까 궁금하지만, 백핸드 스매싱은 아직 레슨을 통해 배운 적도 없다. 그리고 나 같은 어르신이 하기는 신체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백핸드 푸시는 게임 중에 가끔 기회가 온다. 왜 백핸드 푸시가 성공했을 때 포핸드보다 더 통쾌할까? 단순히 백핸드가 포핸드보다 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백핸드 그립에서 엄지로 그립을 세게 누르는 맛 때문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포핸드 그립으로 푸시를 할 때 오른 손목을 살짝 돌리면서 누르는 동작보다 백핸드 그립에서 엄지를 빠르게 누르는 동작이 더 세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백핸드가 더 공격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어르신!
배드민턴 함 시도해 보세요. 유전자에 내재된 공격성도 배출하고, 제2의 심장이라는 종아리 근육도 커져요. 더 나이 들면 배드민턴 치기 어려워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고 영영 떠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