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을 치며 골프를 생각하다.
1988년 올림픽 열기 속에 시작했으니 벌써 35년이나 골프를 쳤다. 그동안 골프 외에는 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골프연습장에서 샷을 가다듬었다. 한 시간 정도 죽어라 골프채를 휘두르면 어렴풋이 등 쪽에 땀이 나는 것을 느낀다. 골프를 치며 전에는 잘 걷지도 않았다. 카트비를 냈으니 열심히 카트를 타고 골프를 쳤다. 한 동안
골프보다 더 재미있는 운동이 있겠냐고 생각했다.
2022년 1월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근처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최소한 난타를 칠 상대가 필요한 배드민턴을 시작하려니 주변머리 없는 나는 은근 걱정이 된다. 그래서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레슨 시간 동안은 최소한 코치선생님이 셔틀콕을 쳐주실 테니... 배드민턴은 아무나(?) 붙잡고 난타를 치며 잠시 몸을 풀고는 어떻게든 네 명을 모아 복식게임을 한다. 골프도 보통 네 명이서 함께 치지만 배드민턴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골프는 자기 공만 친다.
골프는 정지하고 있는 작은 내 골프공을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치는 것이 핵심이다. 같이 플레이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치든지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배드민턴은 네 명이서 편을 갈라 셔틀콕 하나를 부지런히 상대방 코트로 날려 보낸다. 움직이는 공을 빠르게 쫓아가 서로 번갈아 친다.
정지한 골프공과 움직이는 셔틀콕.
어느 것이 치기 더 어렵냐고 묻는다면 나는 둘 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골프는 홀까지의 거리를 생각하고 중간의 온갖 장애물을 고려하여 어떤 클럽으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보낼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가능한 멀리 보내는 것이 좋은 드라이버, 정확한 방향과 거리가 중요한 아이언, 그린 주변에서의 어프로치, 그린 위에서의 퍼터 등 총 13개가 허용된 클럽 세트가 필요하다. 좋은 장비가 좋은 플레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체형과 체력에 맞아야 한다. 신기술이 가미된 새 장비가 계속 출시된다.
붓이 명필을 만들지 않지만 명필은 항상 좋은 붓을 찾는다.
골프에 비하면 배드민턴 장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실내 체육관용 신발과 배드민턴 채만 있으면 된다. 오래 배드민턴을 친 동호회원들은 신발도 바꾸고, 라켓도 이미 여러 개 갖고 있다. 금세 땀에 젖는 운동복도 옷장이 벌어져 나올 만큼 있다고 한다. 거의 매일 배드민턴을 치니 매일 운동복을 갈아입어야 한다.
배드민턴 복식경기는 파트너와 상대 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줄 알아야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상대가 못 받아내 상대 코트에 셔틀콕이 떨어져야 점수를 얻는다. 빠르게 날아오는 셔틀콕을 거의 반사적으로 받아치다 보면 누군가는 실수를 한다. 작은 코트를 파트너와 공유하기에 나름 규칙적으로 자리차지와 자리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어느 정도
연륜이 쌓여야 이 규칙을 이해할 수 있다.
골프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만 실내 체육관에서 하는 배드민턴은 날씨와 무관하다. 눈이 남아 있는 골프장에서 새빨간 공으로 플레이하기도 하고, 우산을 들고 비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골프를 치기도 하지만 눈비가 오거나 너무 춥거나 더우면 골프 치기는 힘들다. 그런 면에서 배드민턴은 이점이 있다.
골프가 생각하며 걷는 운동이라면, 배드민턴은 생각하며 뛰는 운동이다.
너무 격렬하게 뛰는 운동이라 무릎이나 발목을 다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무리하게 뛰다가 연골이나 인대를 다쳐 한동안 쉬거나 영영 그만둘 수 있다. 그러나 격렬하게 뛰다 보면 다리 근육도 좋아지고 심폐기능도 좋아짐을 느낀다.
땀 흘려 뛰고 샤워하는 맛은 어느 운동이나 환상이다. 배드민턴을 치다 보면 다른 운동을 할 여력도 없고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하루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못해 운동량이 차고 넘친다.
이즈음 골프보다 배드민턴이 더 재미있다.
골프는 거의 하루를 투자해야 하고,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대폭 오른 그린피는 부담스럽고, 골프장 부킹은 광클을 해야 그나마 가능하다. 그리고 함께 하루를 투자할 네 명을 모아야 한다. 그에 비해 배드민턴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광클을 할 필요도 없고 사람을 모을 수고도 필요 없다.
차고 넘치는 운동량,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동호회원들 덕분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는 여생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