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Mar 27. 2023

배드민턴을 우아하게...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는 것보다 더 좋은 표현은 우아하다는 것이다. 우아하다는 것은 딱히 정의 내리기 어렵다. 영어로는 'grace'나 'elegance'란 단어가 있지만 영어로도 우아함을 설명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아함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운전을 잘할 수는 있지만 운전을 우아하게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우아한 운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우아한 운전이란 타고 있는 승객과 내가 몰고 있는 자동차의 주변 모든 사람들을 아주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운전이 난폭하다면 타고 있는 승객조차 불안할 것입니다. 어쩌면 천정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슬며시 잡을지 모르겠습니다. 앞 차와의 간격을 너무 벌려 많은 차들을 끼워주며 간다면, 내 뒤를 따라오는 운전자는 짜증을 낼 것입니다. 차선을 변경할 때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고 급하게 끼어든다면, 옆 차선의 운전자가 빵빵할 것입니다. 너무 천천히 달려도 안되고 너무 빨리 달려도 안됩니다. 전체 교통 흐름에 조금의 교란도 주어서는 안 되겠지요.


보이지 않는 운전자들까지 편안하게 만들면서 운전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주변 모든 운전자들의 위치와 속도를 파악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면서 모두를 배려하는 운전을 저는 '우아한 운전'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내가 운전함으로 인하여 승객, 주변 운전자 및 보행자까지 전혀 심리적 불편을 주지 않는 운전, 가능할까요?


서울처럼 복잡하고 교통이 정체되는 곳에서 이런 우아한 운전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우아한 운전을 시도하기 위한 준비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 번째는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시간 맞춰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주는 엄마 아빠에게 이런 여유를 바라기는 힘들겠지요. 출근시간에 늦을 것이 확실한 직장인에게 이런 여유를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결국 충분히 일찍 출발한다면, 시간적 여유와 심적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유 없이 우아함을 보이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운전 실력입니다.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통과하는 수준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 말입니다. 공간지각력, 반사 신경, 다른 차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가끔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는 고등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는 기사를 접합니다. 배달 일은 급합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기에 자동차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능력을 키울만한 시간도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실력과 경험을 쌓을만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겠지요.


우아함을 위해서는 여유와 실력이 필요합니다.


배드민턴을 우아하게 치고 싶습니다.


혼자 하는 단식경기라면 좀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나만 우아하게 쳤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호회에서는 복식경기만을 합니다. 코트가 부족하기도 하고, 단식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모두 복식경기를 합니다. 복식경기에서는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서로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명이서 경기를 하다 보니 우아한 배드민턴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기고 지는 모든 스포츠 경기와 게임은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각인된 공격성을 달래기 위한 것이란 이론을 들어 보셨나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격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공격이 최고의 수비란 말도 있으니까요. 싸우기 싫어도 죽기 살기로 싸우자는 대상을 마주칠 수 밖에는 없으니까요.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뜻합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드민턴 복식경기에서 우아하게 이길 수는 없을까요?


지금도 교류하고 있는 어떤 친구가 있습니다. 필리핀으로 혼자 골프백을 메고 갔습니다. 필리핀에 살고 있는 친구가 공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바쁜 일이 생겨 처음 본 사람이 저를 공항에서 픽업하여 바로 골프장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친구의 친구가 마중 나온 것이지요. 골프장으로 가는 중에 어제도  골프를 쳤는데 간신히 100을 안 넘겼다며, 지금 가는 골프장은 비교적 쉬운 곳이라는 얘기를 들려주더군요. 저는 90 정도 치는 수준이라 저보다 어제 못 쳤다는 말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낯가림이 좀 심하거든요. 가벼운 내기를 하며 편하게 골프를 둘이 쳤습니다. 2불 정도 제가 잃었습니다. 저보다 스코어가 좋기는 했는데 몇 번의 샷은 아주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끝나고 둘이 맥주 마시며 제가 정색을 하고 물었습니다.

"솔직히 당신 골프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어제 100을 칠 실력은 아닌데..."

이제 좀 친해졌으니 다 얘기하더라고요. 자기는 누구와 치든, 어떤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과 치든 스코어 딱 2개만 이긴다고요. 심지어 세미 프로란 사람하고 쳐도 딱 2개만 이긴다고요. 골프를 사람 사귀는 재미로 치는데 너무 이기면 그 사람과 다시 칠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서...


1년 동안 배드민턴을 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배드민턴 복식에서 우아하게 이기는 스코어가 25:23 이란 것을. 내기를 하지 않더라도 너무 일방적으로 이기면 다시 한번 치자고 안 할 테니까요. 복식경기는 넷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일방적으로 잘 치면 넷을 만들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중국의 배드민턴 영웅 린단의 지난 경기들을 유튜브에서 거의 섭렵하고 나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초기의 린단은 이겨도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상대와 악수를 먼저 합니다. 이길 때도 있지만 질 때도 많았으니까요. 그때의 린단이 좋았습니다. 린단의 스텝 밟는 것이 정말 우아했습니다. 그러나 절정의 기량으로 거의 모든 상대를 제압하던 때의 린단은 변했습니다. 경기를 이기고 일단 웃통을 벗어 관중석으로 던집니다. 그리고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사자가 포효하는듯한 세리머니를 한 참 하고 나서야 네트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대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더라고요. 그런 세리머니를 보는 저는 불편했습니다. 아마도 이긴 린단의 기쁜 마음보다 린단에게 진 선수의 마음에 오히려 공감이 가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큰 대회에서 이겼다는 기쁨을 맘껏 뽐내던 린단도 결국은 은퇴를 하더라고요.


누구와 함께, 누구를 상대하든 25:23으로 우아하게 이기려면 제 실력을 더 키워야겠지요.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는 충분히 있으니까요. 체력은 서서히 떨어지는 이 나이에 실력을 키우려면 어찌하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UwgsscY2YIU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