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제 아플지 모른다.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꼭 일 년이 되어 간다.
50여 명 되는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고 있지만 나이는 몇 살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동호회란 땀내며 함께 운동하는 것이라 다른 것 필요 없고 중요한 것은 오직 배드민턴 실력이다. 수준이 비슷해야 게임을 할 때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이나 직업이나 성별이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처음 사람과 관계를 시작할 때 제일 궁금하고 중요한 것은 나이고 다음은 직업이다. 궁금하지만 개인정보를 묻는 것은 실례라는 인식이 이젠 사회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지금 세상은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있어 경험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상대방의 나이가 궁금하다. 나와 비교하여 나이가 적은데 잘 치면 나이가 적어서 그런 거고, 나이가 많은 데 잘 치면 구력이 길어서 그렇다고 위안을 한다. 실력을 비교하는데 나이가 필요하다.
동호회의 목적은 비숫한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는 넷이 모여 모든 근심 있고 오로지 게임에 몰입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골프도 보통 네 명이 치지만 골프는 완전히 개인의 실력에 의해 자신의 스코어를 만드는 것이다. 혼자 쳐도 무방하고, 기본 룰과 매너만 안다면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와도 함께 칠 수 있다. 이런 절대적인 게임을 상대적인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내기이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골프 치면서 내기를 한다. 실력이 엇비슷하면 스트로크당 얼마씩(어르신들은 보통 천 원)하는 간단한 룰이 가능하지만 실력차가 크면 내기가 재미가 없다. 그래서 실력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니 좌파 우파니 해서 편을 가르고 심지어는 뽑기 통을 갖고 다니며 매홀 치고 나서 뽑기를 통해 편을 나눠 스코어를 비교한다. 그렇지만 배드민턴 복식 게임은 원래가 편먹고 하는 것이라 게임을 비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제일 잘하는 사람과 제일 못하는 사람이 같은 편을 하는 것이 일종의 법칙이다.
넷 중에 확실히 수준이 떨어지는 회원과 같은 편이 된다는 것은 넷 중에 내가 제일 잘 친다는 것을 나머지 세명이 인정한 것이다. 인정받았다는 것에 기뻐해야 한다. 이기는 것에 기뻐하지 말고...
이번 주는 주중에 하루도 동호회에 출석 못했다. 친구들과 6일 동안 치앙마이 골프 여행하고, 토요일 아침 체육관을 찾았다. 딱 일주일 만에 배드민턴 채를 잡았다. 가슴이 설렌다. 사실 엄청 땀나고 싶었다. 치앙마이는 한낮에는 30도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했기에 땀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원래 골프는 땀내는 운동이 아니다. 골프의 시작은 귀족들이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하는 운동이었고, 20세기 전반부까지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하는 스포츠였다. 치앙마이에서는 One Bag One Caddie 시스템이다. 플레이어마다 한 명의 캐디가 붙는다. TV에서 골프 중계 보듯이... 옛날 영국 귀족처럼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페어웨이에 골프카트가 들어갈 수 있으니 그린 주변부를 제외하고는 걸을 필요조차 없다. 즉 운동이 아니다.
토요일은 동호회 시간도 짧아(10:30-11:50) 나오는 회원도 많이 없다. 그래서 코트도 여유가 많지만 사람이 없으니 게임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주중에는 감히 함께 칠 수 없는 회원들과 게임을 할 수 있다. 어쨌든 넷은 모아야 하니깐... 남자 회원들의 빠른 공을 맛 볼 기회도 있고, 동호회의 주력인 잘 치는 여성회원들 틈에 낄 수도 있다. 회원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얼추 안다. 오늘 선주님(동갑이라며 환영한다고 해현님까지 함께 점심을 샀다), 영희님(동호회 첫날 어찌할 줄 모르는 내게 제일 먼저 난타를 치자고 했다), 미연님(이미 게임을 함께 많이 했다.)과 게임을 했다. 이 구성이 처음이라 어찌 편을 나눠야 비등할까 했는데 선주님이 같은 편 하잔다. 나는 속으로 그럼 지는 게임이네 했다. 영희님도 잘 치고 미연님이 전위에 서면 내가 친 어설픈 공은 모조리 다 잡는다. 그러나 결과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다.
처음 체육관을 찾았을 때 머리가 하얗고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젊을 때 인기 많았을 잘 생긴 남자 회원이 있었다. 나보다 위일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처음이라 멀뚱 거리고 있는 내게 난타 치자고 먼저 청하시고, 내게 무릎보호대 할 것을 권하셨다. 슬림한 몸매에 쉽게 하이클리어 치시는 것을 보니 배드민턴 구력도 제법 있어 보였다.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분이었다. 이름도 제대로 묻지 못하고 서너 번 정도 난타도 치고 함께 게임도 했다. 게임을 하면서 보니 무릎에 조금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는 한동안 보지 못했다. 아침에 체육관을 찾으면 반갑게 인사하고 난타치자고 청할 분이었는데 보지 못하니 아쉬웠다.
두 달 정도 지나서 조금 늦은 시간에 그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한참 게임 중이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있는데 쉬고 있던 한 여성 회원이 너무나 반갑게 그분을 맞이하는 것이 보인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고 무슨 일 있었냐고 가까운 사촌 오빠라도 만난 듯이 손까지 잡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 보인다. 나도 게임 끝나면 여성 회원처럼 저렇게는 못해도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봐야지 했다. 그러나 내가 게임이 끝나고 찾았을 때는 이미 체육관을 떠나신 듯했다. 배드민턴을 치지도 않고 무슨 일로 나오셨나 궁금했다. 며칠 뒤에 생각이 나서 그날 엄청 반갑게 맞이했던 회원에게 물어봤다. 그분 어디 가셨냐고? 아프셨단다. 그리고 며칠 전에 체육관을 찾은 것은 락카에 있던 물품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단다. 그렇게 동호회를 떠나신 것이다. 나이가 궁금해서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 물었더니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랑 비슷한 연배일 거란다.
나도 언제 아플지 모른다.
나도 언제 배드민턴 같이 과격한 운동을 못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