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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6. 2023

배드민턴을 딱 일 년 쳐보니...

배드민턴이 너무 재미있다. 운동량도 상당하다. 다른 운동할 여력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오십견이라는 어깨 통증도 없어졌고,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도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제법 만져진다. 그러나 지병인 족저근막염이 아킬레스건염으로 발전해서 자고 일어나면 첫걸음을 떼기가 두렵다. 발뒤꿈치를 좀 주물러 주고 한 동안 움직이면 견딜만하다.


밤에 자다가 종아리나 엄지발가락에 쥐가 나는 하지정맥류는 새로 붙은 다리 근육들로 인해 많이 좋아졌지만, 무릎을 비롯한 다리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니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엎어져서 다리를 뒤로 꺾는 자세(마사지 받다가)를 하면 허벅지 뒤 근육이 쥐가 날 정도로 아프다.


레슨 받는 날은 레슨 받기 30분 전부터 몸을 풀고(주로 다리를), 레슨 없는 날에는 동호회 시작 30분 전부터 몸을 푼다. 체육관이 허전한 그 시간이 너무 좋다. 40여 년 전 조조할인 영화를 혼자 보러 가던 시절이 생각난다. 텅 빈 객석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리던 그 여유가 느껴진다.


이즈음은 유튜브에 온갖 것이 다 있다.


배드민턴 관련 유튜버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배드민턴을 치고 나서 알았다. 레슨 영상도 차고 넘치고, 경기 영상도 차고 넘친다. 시간 날 때 배드민턴 관련 영상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배드민턴을 일 년쯤 치다 보니, 어떻게 치는 것이 잘 치는 것인지도 좀 알겠고, 어떤 실수를 하는지도 좀 보인다. '우아함의 기술'이란 책이 있다. 저자 사라 카우프먼은 유명한 운동선수들의 움직임에서 우아함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아주 최근에 은퇴한 테니스계의 제왕이었던 로저 페더러(스위스)의 플레이의 우아함을 예로 들었다. 조코비치나 나달과 함께 한 세대를 풍미한 페더러는 결국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은퇴하였다.


유튜브에서 배드민턴 경기를 찾아보다가 중국의 '린 단'의 플레이( https://youtu.be/hLvzCg6pnD0 )에서 우아함을 보았다. 말레이시아의 리총웨이도 잘 치지만 단연 린 단의 대각 점프 스매싱이 압권이다. 경기 중에 거의 무표정한 린 단의 얼굴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머리 쓰기 싫은 자투리 시간에 린 단의 지난 경기들을 거의 섭렵하고 있다. 1983년 생인 린 단의 늙어가는 몸과 표정에서 안타까움도 읽는다. 린 단은 2020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배드민턴 경기를 보다 보면 가장 통쾌한 것이 점프 스매싱과 네트 킬이다. 스포츠 경기를 보는 이유가 그 통쾌함을 보는 사람도 느끼기 때문이다. 근 일 년을 레슨을 받다 보니 언제쯤 점프스매싱을 가르쳐주려나 노심초사 기다리는데, 어느 날 코치선생님 왈 "재건님은 이제 힘으로 배드민턴 칠 나이는 아니잖아요. 연세에 비해서 콕을 잘 쫓아가시니까 스텝 연습을 많이 하세요."


'힘으로 하는 점프 스매싱 나도 해보고 싶은데...'.  


동호회에서 게임을 하거나 구경하다 보면, 잘 치는 남자 회원들의 게임에서는 콕을 받아치기 위해 몸을 날리다가 코트에 엎어지기도 한다. 저러다 다치면 어쩔라고 하나 했는데 린 단의 경기를 보다 보면 허구한 날 몸을 날려 쓰러지고 바로 일어난다. 린 단처럼 콕을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이해된다. 그렇지만 나는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배드민턴 게임은 셔틀콕을 주고받는 상대적인 게임이라 아무리 잘 치는 사람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날의 경기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자신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잘 치는 상대를 만나거나, 그날 컨디션이 어제보다 좀 떨어지면 맥을 못 춘다.


골프에서도 골프가 잘 안 되는 이유가 108가지나 있다는데,  그 108번째 마지막 이유가 '오늘 참 안되네'이다. 그리고 109번째 이유가 ‘너랑 같이 치는 날은 참 안되네’이란다. 비교적 절대적인 게임인 골프가 그러하거늘 배드민턴 게임은 확실히 상대적이라 상대의 실력과 컨디션에 내 경기가 큰 영향을 받는다.


복식게임만을 하다 보니, 파트너 되면 편한 회원과 좀 불편한 회원이 있다. 불편함은 경기 중의 잔소리 때문이다. 게임을 이기기 위해 하는 사람은 경기 중에 파트너에게 요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생각대로 남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나처럼 몸이 안 받쳐줄 수도 있고 구력이 안되어 복식경기의 흐름을 모를 수도 있다. 자식도 내 맘대로 되지 않거늘 어찌 남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겠는가?


당연히 편한 상대와 불편한 상대가 있다. 나보다 실수가 많은 상대가 편한 상대고, 좀처럼 실수가 없는 상대는 불편한 상대다. 불편한 상대를 만나면 짜증이 나고 심지어 얄밉기도 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말레이시아의 리총웨이에게 중국의 린 단은 불편한 상대임에 틀림없다. 리총웨이와의 40번의 경기에서 린 단은 28번 이기고 12번 졌단다. 린 단이 부모님의 뜻대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면 리총웨이가 배드민턴계를 평정했을 것이다.


연말이 다가오자 동호회 총회를 한단다. 동호회 총무가 더는 못하겠다는 소리를 흘려들은 적 있어 누가 총무를 맡으려나 했다. 원래 모든 모임에 총무가 제일 힘들다. 회장은 많은 부분을 재력(?)으로 때울 수 있지만 총무는 결코 돈으로 때울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모임이 총무를 구하기가 제일 힘들다. 이타적인 품성이 있어야 총무를 할 수 있다. 보통은 총무가 결국은 회장이 되기에 회장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보기도 한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다. 생존을 위해서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생존이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도 이타적인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면 이타적인 품성의 유전자가 오히려 번성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기적인 인간들도 남들의 이타적인 품성에 대해 박수를 쳐주기 때문이다. 자기는 안 하지만 또는 못하지만 남들의 이타적인 품성에 호감을 보인다. 지난 회기의 부회장 하던 분이 총무를 맡기로 했다는 것을 듣고 박수를 쳤다.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모임이 유지되고 사회가 유지된다.


일 년 전 배드민턴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임에 틀림없었다. 첫날 코치선생님이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몸에 무리가 가는 신호는 자신만이 안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일 년 무사히 배드민턴을 칠 수 있었다는 것에 조상님께 감사한다. 코치선생님 말마따나 나이에 비해 콕을 쫓아 달려갈 수 있는 다리 유전자를 전해주신 것에...


어르신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여한이 없게 살아야 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하기에도 건강한 여생이 많이 남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젊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영생을 살듯이 사는 사람들처럼 살면 안 된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혼자라도 바로 찾아 먹고, 하고 싶은 것 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꼭 하고,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바로 계획을 세워 갈 날을 정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면 카카오톡 메시지 남기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설산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서귀포에서 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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