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하는 사람은 많지만 칭찬하는 사람은 드물다.
월수금 아침마다 배드민턴 레슨을 받고 있다.
이즈음 왼쪽 백핸드 푸시와 백핸드 드라이브를 레슨 받는 중이다. 짧게 끊어치는 푸시는 그럭저럭 되는데, 백핸드로 똑바로 길게 보내야 하는 드라이브가 잘 안 된다. 왼쪽으로 날아오는 셔틀콕을 9시 방향으로 몸을 돌려 오른 팔꿈치와 손목 스냅을 이용해 멀리 보내야 한다. 셔틀콕에 힘을 실어야 한다. 백핸드 드라이브가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 생각해보니 거리가 문제다. 타격하는 순간 셔틀콕과 내 몸과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해야 한다. 셔틀콕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스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힘 있게 셔틀콕을 타격할 수 없다. 멀면 라켓이 셔틀콕에 닿을 수 있을지언정 힘을 싣기 어렵다. 날아오는 속도와 높이가 다양한 셔틀콕을 따라잡아 적당한 거리에서 타격하기가 어렵다. 몸이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년과 노년의 경계(?)에 서있는 신체를 어찌하리오.
앞을 보고 있다가 셔틀콕을 따라 왼쪽으로 이동을 시작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오른발을 고정하고 왼 발만 왼쪽으로 내딛는 것이고, 하나는 왼 발은 힘을 완전히 빼서 자유롭게 하고 오른발로 바닥을 차면서 몸 전체를 왼쪽으로 미는 것이다. 이동의 시작을 왼 발이 주도할 것이냐? 오른발이 주도할 것이냐? 왼 발을 멀리 내딛으려면 탄력 있게 오른발로 바닥을 차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늙고 지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발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다. 하긴 파킨슨병 진단받은 친구도 있고 소뇌 위축에 따른 운동 실조증 진단받은 친구도 있다. 나이 들면 걸음걸이가 누구나 이상해진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직 격렬한 운동인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는 것을 조상님께 감사해야 한다.
셔틀콕과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중요하다.
모든 관계에는 거리가 있다. 부부나 연인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있다. 항상 딱 붙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있다. 너무 가깝게 있어도 안 좋고 너무 멀리 있어도 안된다.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역할과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자식의 성장과 함께 거리는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배드민턴 동호회원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있다. 부모 자식처럼 천륜의 관계도 아니다. 특별한 이해관계도 전혀 없다. 거의 매일 만나 파트너를 계속 바꾸면서 치열하게 복식 게임을 하는 관계이다. 거리가 가까운 관계가 항상 문제를 안고 있다. 부부나 연인 간, 부모 자식 간처럼 말이다. 최근에 항공사 객실 승무원을 만났다.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비행기 진상 승객이 얼마나 골치 아프냐고 물었다. 진상 승객보다 진상 팀장이 더 골치 아프단다. 진상 승객은 매뉴얼대로 대부분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진상 팀장은 답이 없단다. 매뉴얼도 없단다. 역시 팀장과 팀원의 관계도 항상 문제가 많다. 이해관계가 있는 갑을 관계는 역사적으로도 항상 문제였다.
테니스를 오래 친 대학 동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은퇴를 앞둔 지금도 대전 국책연구소에서 직장 동료들과 테니스를 열심히 친단다. 테니스와 배드민턴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사람들은 복식 게임만을 한다. 그리고 게임에 사람들은 정말 진심이고 정말 열심이다. 게임에 지면 알게 모르게 파트너를 탓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친구 왈 테니스 치는 사람들이 제일 기피하는 파트너는 게임 중에 파트너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란다.
잔소리하는 것은 본능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주변을 항상 통제하고자 한다. 주변은 환경인데 자연환경뿐 아니라 가족이나 동료도 모두 주변 환경의 일부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는 주변을 확실히 통제하지 못하면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나 달려드는 맹수와 옆 마을 남자들의 공격에도 대비해야 하고 천재지변이나 계절의 변화에도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주변을 통제하는 것이 권력이다. 주도적으로 권력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아 자신들의 DNA를 후손에게 전달했다. 주변을 제어하려는 욕구, 즉 권력욕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권력은 명령, 권고, 충고, 조언 및 잔소리로 표현된다.
조언과 잔소리는 사실 구별이 안된다. 오직 듣는 사람의 심적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면 조언이고, 듣고 짜증이 나거나 부아가 치밀어 오르면 잔소리다. 모든 게임에는 전략과 전술이 있다. 특히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고 둘이 편을 이뤄하는 복식 게임은 더 많은 전략과 전술이 있다. 게임이 내 맘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내가 못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고 파트너가 못하는 것은 잘 보인다. (똥 뭍은 개가 겨 뭍은 개 나무란다. 남의 눈의 티끌을 흉보며 내 눈의 대들보는 못 본다.) 그러니 잔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잔소리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란 제목의 책도 있다. 잔소리가 효과가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지만 잔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주변을 통제하려는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잔소리보다는 칭찬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다. 나를 칭찬하던 부모님은 이제 다 돌아가셨다. 이제는 자식들을 칭찬해야 할 시간이다. 잔소리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