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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2. 2022

배드민턴 6개월 중간 정산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아침부터 비가 많이 온다. 오늘이 배드민턴 치기 시작한 지 만 6개월 되는 날이다. 환복하고 체육관에 들어선 시각이 9:30분이다. 코트가 7면이나 있는 체육관이 텅 비어 있다. 아무도 없다. 내가 일등이다. 새벽반 동호회는 9시에 끝나고 오늘은 9시에 시작하는 개인 레슨도 없는 날이다. 아무도 없는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좋을 수밖에. 이런 순간이 너무 좋다. 체육관 유리창 밖에는 아직도 비가 쏟아지고 있다. 혼자 몸 풀며 사람들 오기를 기다린다.


6개월이 갖는 의미는 크다. 동호회 등록한 지 3달이 지나야 동호회 밴드에 초대된다. 한두 달 치다가 그만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란다. 6개월이 지나야 정식 회원으로 간주된다. 어디 회칙이나 규정에 쓰인 것은 없지만 나는 안다. 지난달 동호회 단체복을 주문할 때, 동호회에서 전액 지원해주는 회원은 6개월 이상 등록한 회원만이 대상이었다. 드디어 나도 정식 회원이 된 것이다. 아마도 다음 단체복 주문할 때는 전액 지원받겠지 싶다.


년초에 처음 배드민턴 시작할 때는 코로나가 아직 창궐하던 시기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배드민턴 코트가 붐비지 않았다. 그때가 참 좋았다.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면서 그동안 실내 체육을 쉬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난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체육관에 들어설 때마다 아는 회원들은 엄청 반갑게 맞이들 한다. 오랜만에 친척을 만난 듯이... 5월부터는 코트가 붐비기 시작했다. 아니 모자라기 시작했다. 코트 배정 순서를 정하는 보드가 생겼다. 게임을 할 네 사람을 정하고 보드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코트가 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6개월 동안 월수금 아침 9시에 개인 레슨을 받았다. 레슨은 한 동작을 계속 반복하여 몸과 근육에 기억시키는 과정이다. 느려진 몸과 빠진 근육이 기억하기 힘들어한다. 가쁜 숨만 헐떡이고, 땀만 쏟아지지, 코치 선생님이 원하고 내가 원하는 우아한 동작은 잘 안된다. 사실 모든 것이 젊을 때 배워야 진도도 빠르고 효과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젊을 때는 해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란 피교육자를 정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나 정보는 지금 유튜브나 블로그에 다 있다. 레슨은 피레슨자의 몸과 근육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변화할 가능성이 1도 없는 학생을 교육하는 것처럼 끔찍하고 한심한 일 없다. 레슨을 통해 체력이나 능력이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정말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레슨을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배워서 변하고 싶다는 의지는 충만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양한 회원들과 어울려 복식 게임을 한다.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배드민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6개월이 되니 이제는 대충 안다. 누구와 같은 편을 해야  게임이 비등하게 갈지를 나름 안다는 말이다. 거의 매일 아침 배드민턴에 중독되어 체육관을 찾는 사람들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해 매일 열심히 배드민턴을 치며 온갖 문제들을 잊고 무아지경에서 콕만 쫓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재미있는 게임은 실력이 엇비슷한 네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많이 해보니 이제는 알겠다. 그러나 그런 네 사람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든 넷을 모아 게임에 집중한다. 나는 내 실력이 아직 초보임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게임에 나서지 못한다. 끼워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를 견지할 수밖에...


간혹 게임을 하다 보면 얄미운 사람들이 있다. 얄밉다는 단어 외에는 딱히 표현할 단어가 적당치 않다. 클리어할 줄 알았는데 드롭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크로스 헤어핀을 당할 때 느낀다. 곰곰 생각해보니 예상 못한 곳으로 심심치 않게 콕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빈자리로 콕을 보내는 것이 가장 쉽게 이기는 방법이다. 페인트 모션을 잘하고 빈자리를 보는 시야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얄미울 수밖에...


게임 중에 파트너의 잔소리에 라켓을 분지르고 체육관을 떠나는 사람을 본 것은 충격이었다( https://brunch.co.kr/@jkyoon/399 ). 그리고 배드민턴 10대 꼴불견 다섯 번째 '승리했을 때는 악수하고, 패했을 때는 악수 없이 바로 퇴장하는 것'도 목격했다. 내 파트너였는데 내가 너무 못 쳐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목격한 것이 아니고 당한 느낌이라 그날 좀 우울했다. 내기한 것도 아니고 그날 처음 같이 쳤는데... 사실 누구나 분노를 조금씩은 품고 있다. 내 인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던 적이 있다면 분노를 갖고 있는 것이다( https://brunch.co.kr/@jkyoon/414 ). 분노심은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에도 도움이 되기에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심을 조절할 줄 안다. 쓸데없는 분노심의 노출은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오히려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란 책도 있다.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려니 한다.


내 육신이 좋아졌다. 대퇴근과 종아리 근육도 생겼고 오른손 팔뚝도 제법 단단해졌다. 거의 매일 땀 흘리며 운동하니 그렇게 줄지 않던 몸무게도 3킬로 정도 줄었다. 12시경에 짜릿한 샤워를 하고 나면 몸도 가볍고 심지어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다. 오후 시간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운동 중독의 좋은 점이다.

 

중독이라 함은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나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즈음 배드민턴 중독이다. 엄청 땀 흘리며 하는 과격하고 재미있는 운동이다. 운동중독은 건강한 중독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건강하지 못한 많은 중독(알코올, 담배, 마약, 도박 등)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거의 매일 하기에 어떤 때는 배드민턴이 습관이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습관화된 중독이란 생각이 든다.


보통 건강하지 못한 중독은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없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벗어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건강한 중독이라도 습관이 되었다면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노동하고 잠자는 시간 말고 내게 허여 된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냐가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이다. 습관화된 중독 때문에 다른 좋고 많은 선택을 할 시간이 혹시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배드민턴 가방 챙겨 체육관을 찾는 것을 잠시 두 달간 끊어볼 생각이다. 마침 여름 방학이 되어 내 일상도 달라졌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달라진 겨울방학부터 시작한 배드민턴을 돌아볼 기회도 생겼다. 서귀포에 내 동굴( https://brunch.co.kr/@jkyoon/324 https://brunch.co.kr/@jkyoon/412 )을 마련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여름 방학을 즐기며 내 인생을 조망할 타이밍이다.

https://brunch.co.kr/@jkyoon/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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