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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4. 2023

Shut up!


대학 동기모임이었다. 아주 가벼운 등산을 한 달에 한 번 함께 한다. 지난번 등산이 좀 힘들어 뒤풀이를 못하고 헤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에 시내에서 뒤풀이만을 하기 위해 모였다. 딱 8명이 모였다. 난 다른 일이 있어 등산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뒤풀이는 참석했다. 수십 년을 보아온 익숙한 얼굴들이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준다. 익숙함을 사랑이나 우정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일 년 전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는 동기와 마주 보고 앉았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아주 편한 친구다. 결코 주변을 조금도 불편하게 안 한다. 평생 그래왔다. 남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느라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파킨슨병이 일찍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차로 커피 마시러 자리를 옮기면서 보니,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걷는 것이 불안해 보인다. 아마도 조금씩 병은 진행되고 있겠지 싶다.


다음 달에 아내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난다고 한다. 잘 갔다 오라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안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친구의 아내는 병세가 더 심해지기 전에 남들처럼 산티아고 길을 완주하는 기쁨을 함께 누려보고 싶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미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늙어서 하는 고생은 고생일 뿐이다. 친구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은 듯 보인다. 오히려 걱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잘 걷는 아내에게 짐이 될까 봐... 순전히 내 생각일 수 있다.


한 친구가 쉬지 않고 말을 한다. 전에도 느꼈지만 오늘 좀 더 심한 것 같다. 더욱이 낮부터 막회를 앞에 놓고 소주도 한 잔 걸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술 한 잔 마시면,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많아진다. 크게 논리에 벗어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계속 말을 할 수 있나 싶다. 8명이 테이블 두 개를 붙여 앉았는데 나와 그 친구는 대각선 끝과 끝에 앉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원탁이나 4명 한 테이블이었다면 어찌 피할 도리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키워드로 '노인 말을 쉬지 않는다'라고 넣으니 쏟아져 나온다. chatGPT에 물어볼 걸 하고 후회했다. 그러나 답은 쉽게 찾았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주를 이루는 웹사이트에 한 며느리가 자유게시판에 질문을 했다. '노인들은 왜 끊임없이 말을 할까요?'란 제목에 "시어머님이 당분간 우리 집에 와 계세요. 식사 수발 정도는 크게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 아침에 일어나셔서 밤에 주무실 때까지... 잠깐 낮잠 주무시는 시간 빼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말씀을 하세요. 당신의 옛날옛적 이야기부터 나도 잘 모르는 지인과 지인의 자식들과 그 손주들 이야기까지 말씀하시는데... 반응을 안 하기도 그렇고.. 잠시도 제시간을 갖기 힘들어요. 아... 저도 노인이 되면 이럴까요?"


23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댓글에 답이 있었다. 친엄마와 시어머니 모두 그런 분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친엄마한테는 바쁘다고 전화를 끊거나 자리를 피할 수 있는데, 시어머니한테는 서운해하실까 봐 그러지 못한다며... 결국은 노화로 대뇌피질이 손상되어 판단력과 조절력을 잃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에너지가 다리에 몰려서 그렇게 뛰어다니고 번잡스럽다가, 노인이 되면 에너지가 위로 올라가 엉덩이 붙이고 입이 쉬지 않고 말한다는 것이다. 맞장구 쳐주면 좋아서 끝이 없으니 그냥 할 일 있다며 피하란다.


그러고 보니 유머 중에 나이 들면 해야 하는 7-UP 중에 'Shut UP'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쉬지 않고 말하는 내 동기는 일종의 독거노인이다. 보통은 지방 대학 기숙사에 기거한다. 일이 있어야 집에 간다. 아내와 딸들의 잔소리 듣기 싫어 점점 더 잘 안 간다고 본인이 얘기한다. 대화할 상대가 없다. 외로운 것이다. 만약 기숙사 방에서 저렇게 혼자 계속 말을 한다면 누구나 미쳤다고 할 것이다. 아직은 그 지경은 아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노화가 빠른 것이다.


판단력과 결단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내 맘에 꼭 드는 요양원을 정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바다가 보이든지 산이 보이든지...( https://brunch.co.kr/@jkyoon/83 )


수의와 영정사진 미리 준비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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