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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10. 2023

시간 강박


친구를 집에 내려주기 위해 강변도로를 운전하는 중이다. 강변도로 저 앞에 차들이 밀려있는 것이 보인다. 항상 그렇듯이 서울의 도로가 정체 중이다.

"야, 저 앞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샛길로 해서 가면 빨리 갈 수 있어. 저 앞에 저기 보이는데서 빠져!"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데?"

"한 5분."

"그럼 그냥 가."

"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데..."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너나 나 같은 어르신들은 있는 것이 시간인데, 안 가본 길 신경 쓰며 운전하고 가기 싫어."

"내가 자주 다니는 잘 아는 길이라니깐..."

"니가 잘 아는 거지. 정작 운전하는 내가 익숙한 길은 아니야. 그냥 5분 더 걸려도 익숙한 강변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좋아. 5분 절약해 봤자 할 일도 없어."

"이상한 놈이네."

"흐흐 내가 이상한 놈인지 네가 쓸데없이 조급한 놈인지는 하나님이 아실 거야!"


나는 바쁜 척하지 않는다. 사실 바쁘지 않다. 내가 사실 바쁘지 않게 된 것은 습관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해오던 많은 것을 안 하기 때문이다. 습관은 계속 수정하거나 고치고, 관습적인 것은 의미를 따져보고 대부분 하지 않는다. 관습적인 것을 할 만큼 어르신 인생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 진정 나 자신의 자아로부터 우러나온 명령에 따라서만 살기를 원했던 싱클레어(데미안 서문)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절약에 대한 강박이다.


나는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낀다. 나는 항상 '시간을 아끼거나', '시간을 내거나', '시간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다음 회의나 약속, 어린이집 퇴원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하루 종일 시계를 들여다본다. 반면 피지의 내 친구들과 현지 조수들은 이런 시간 중심의 사고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 p. 461 -


친족기반 사회가 무너지고 상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거래 당사자 간의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당연히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은 신용의 기본이다. 그때부터 시간이 중요해졌다. '시간은 돈이다.'란 명언은 미국 독립선언서 기초를 작성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그 당시 교회, 수도원, 대학 등에는 시계탑이 이미 세워져 있었다. 모든 신사는 정장의 조끼주머니에 회중시계를 넣고 다녔다. 그리고 자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계도 발전했다. 한동안 모든 사람의 필수품이었다. 지금의 스마트폰만큼이나... 지금은 사실 시계가 필요 없다. 항상 어디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가장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필수품이던 시계는 장식품이 되고 사치품이 되었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비싼 명품시계를 찰만한 능력이 된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신도 뿌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결코 시간을 보기 위해 차는 것은 아니다.  


젊어서는 시간은 돈이다. 낭비하지 말고 아껴야 하는 자원이다. 어르신에게 시간은 남은 인생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다. 아껴야 하지만 사용처가 젊은이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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