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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9. 2023

넥타이를 왜?

옷장 안에 무수한 넥타이가 걸려 있다.


어르신 되도록 오래 살다 보니 넥타이를 모으는 것도 아닌데 넥타이가 옷장에서 넘쳐나고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분하나 하는 고민에 가끔 빠진다. 많은 넥타이가 기억과 함께 한다. 누구에게 선물 받았는지, 언제 맨 것인지가 기억난다. 그런 넥타이를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것은 그 기억도 함께 버리는 것이다. 아직 기억을 버리고 싶지 않아 그 많은 넥타이를 안고 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검정 넥타이 외에는 매 본 적 없다. 직접 문상 가는 일도 일 년에 한두 번이고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딸 지민이 결혼식에 분홍빛 넥타이를 맸다. 그때가 2016년 가을이다. 그 이후 한 번도 넥타이를 골라 맨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나이 들면서 공식적인 행사 참여가 없었단 얘기다.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할 때는 넥타이를 매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넥타이 매기 싫으면 아예 행사에 참석 안 하면 된다.


왜? 언제부터? 우리가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을까?


왜 서유럽과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을까? 중국, 인도, 이슬람이 아니고. 왜 서유럽과 미국이 지금 가장 잘 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쓰인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를 읽으면서 답을 찾았다.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이라 큰맘 먹지 않으면 읽기 힘든 책이다. 일주일 걸렸다.


최근 몇 백 년 동안 정교한 사회들이 민주적 선거에서부터 넥타이를 매는 기괴한 관습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유럽계 사회(가령 미국)의 다양한 공식적 제도와 법률, 관행을 게걸스럽게 베끼면서 그들의 명백한 경제 군사적 힘에 대응했다. 따라서 문제는 일부일처혼이 상업 시장의 토대를 제공하는 계약법과 비슷한가, 아니면 유럽의 위신에 편승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우스꽝스러운 의복 관습인 넥타이 매기와 더 비슷한가 하는 것이다.    

 -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WEIRD)' p. 341 -


결국 일본이 서양의 제도와 법률, 관행을 베끼고, 우리가 식민지배를 당하고, 연이어 미국의 영향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넥타이 매기가 도입된 것이다. 거추장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의복 관습일 뿐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넥타이의 유래는 17세기 30년 전쟁을 치르고 있는 프랑스에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도착했는데, 그들은 무사귀환을 바라는 연인이나 아내가 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루이 14세가 그 모습을 좋아하여 왕실과 군대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든 제복과 정장에 적용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젊은 여자들이 남자는 긴 머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여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것이나, 모든 사람들이 정장에는 넥타이가 필수라고 생각하여 거추장스러운 넥타이를 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용감한 사람 많지 않다. 용감하지 않다면 무지한 거다.


1991년 뜨거운 여름이었다. 내 나이 만 32세. 기술직의 박사학위에 해당하는 기술사 면접시험을 보러 갔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500여 명(워낙 분야가 많다.) 이상의 사람들이 산업인력공단 강당에서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모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로비에서 서성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왔을 때 아차 싶었다. 모두 한결같이 넥타이를 맨 정장이다. 나 말고 넥타이를 매지 않은 사람은 다섯 명 정도였는데 모두 여성이다. 그날 난 면접시험에 떨어졌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였지 넥타이를 매지 않아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해 재시험에서 넥타이 매고 합격했다.


대학생들도 취업면접 갈 때는 넥타이 매고 정장 입고 간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넥타이 맨 사진을 본 적 없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도 미 의회 청문회자리에서 넥타이를 맸지만 항상 티셔츠 차림이다. 넥타이가 업무능률을 높이는지 낮추는지 모르겠지만 신생 테크 기업들은 넥타이 문화에서 멀어지고 있다. 스웨덴의 가구기업 IKEA는 직원들에게 아예 넥타이 금지란다. 


귀국하면 넥타이를 모두 버려야겠다. 기괴한 관습과 아련한 기억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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