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 작고 가벼운 고깃집이 있다.
옆 테이블에는 아빠와 중학생 정도인 딸 둘이서 저녁밥을 먹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딸은 아이패드를 옆에 세워놓고 눈은 거의 아이패드에 고정한 채 밥을 먹는다.
아빠 역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연신 보면서 고기를 굽고 자른다.
익은 고기를 딸의 앞접시에 올려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혼자 소주를 직접 따라 단숨에 들이켠다.
친아빠겠지. 식당에서 남녀가 아무 말없이 식사를 하면 틀림없는 부부고,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심지어 자주 웃기도 한다면 연인이나 불륜 관계라던데...
엄마는 어디 간 것일까? 동창회 갔나? 친정아버지가 입원하여 간병하러 갔나? 설마 몇 달 전에 병이나 사고로 돌아가신 것은 아니겠지.
동생은 없나? 외동인가? 하긴 요새 하나조차 의도적으로 낳지 않는 부부도 있다는데 하나면 기본은 했다고 봐야겠지.
둘 다 직장을 나가고 있는 부부는 대화가 없었다. 대화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아내는 경리직이라 월말 결산이 있는 날이 아니면 출근과 퇴근 시간은 지켜졌다. 남편은 같은 회사의 영업직이라 지방출장도 제법 많고 퇴근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둘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했다. 비밀스러운 사내 연애를 오래 한 것도 아니고 계산적인 만남도 아니었다. 둘 다 나이가 들만큼 들었기에 남들 하듯이 결혼해야겠단 마음이 있던 중에 뜨거운 마음 없이 쉽게 결혼했다. 결혼 후 일 년 만에 딸이 생겼다.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나면서 아이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젊어서 혼자가 된 외할머니는 말수가 적었다. 외할머니 역시 딸을 한 명 낳았는데 맨 날 노름판을 쫓던 남편은 아이가 두 돌도 되기 전에 집을 나갔다. 딸을 혼자 힘들게 키워낸 외할머니는 평생 우울했다. 우울한 외할머니 손에 키워진 딸도 우울했다. 직장서 만난 남자와 결혼은 했지만 우울증을 벗어나는데 남편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딸을 낳고, 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하여 아기는 혼자 사는 할머니가 맡아 키웠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다. 우울한 외할머니 손에서 우울한 어머니에게 돌아온 것이다. 우울한 분위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는 아이패드다. 아이패드와 함께 있는 아이는 배고프지 않고 우울하지도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세 식구의 일상은 아주 독립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돌아간다.
삼일 전에 엄마가 없어졌다. 출근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했으나 퇴근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 전화기는 꺼져있다. 이런 적 없었다. 혼자 사는 외할머니도 엄마의 행방을 모른다. 오후에 아빠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엄마 실종신고를 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위치추적은 안된다고 한다. 엄마의 전화기가 언제 다시 켜질지 모르니 계속 전화해 보라고 한다.
엄마는 어디 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