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Nov 05. 2023

어르신이 브런치스토리 하는 이유


교회 차량위원회 수련회 장소가 이번에 고창이다. 수련회 일정과 맞춰 골프 치는 집사님들은 골프를 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수련회만 하기에는 좀 허전하다. 1박 2일 골프패키지에 8명이 참여했다. 석정힐 CC, 골프존카운티 선운 CC, 고창 CC가 수련회 장소 인근에 있다.


목요일 오후 1:43 이 티업 시간이다. 서울에서 고창까지는 차로 교통정체가 없다면 3시간 반이 소요된다. 출근길 고속도로 정체를 피하기 위해 새벽 5시에 눈뜨자마자 출발했다. 깜깜한 새벽운전은 일종의 노동이다. 골프장 가기 위한 운전은 오히려 돈을 내고 하는 노동이다. 천안을 지나면서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도로에 차도 줄어 운전할 만하다. 그 깜깜한 새벽에도 수도권 부근의 고속도로는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고 있다. 다들 어디로 왜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나님은 아시려나?


오늘 골프 도우미 캐디가 아주 능숙하다. 골프도 보기플레이 정도는 한단다. 동반자가 티샷을 날렸다. 살았을지 죽었을지 애매하다. 내가 한 마디 했다.

"티샷 한 공과 아들은 살아만 있으면 된다 했는데..." 캐디가 내게 묻는다.

"그 다음도 아세요?"

"딸 얘기? 딸은 보여야 한다며..."

"세컨드 샷한 공과 딸은 눈에 보여야 하고요. 퍼팅한 공과 마누라는 눈에 안 보여야 해요."

머리가 띵했다. 누가 처음 생각해 냈는지 명언이란 생각에...


티샷 한 공과 아들은 살아만 있으면 되고,

세컨드 샷한 공과 딸은 눈에 보여야 하고,

퍼팅한 공과 마누라는 안 보여야 한다.


티샷은 제일 중요하다. 티샷이 O.B.(out of boundary)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지면 벌타를 받고 시작하니 결과가 좋을 수 없다. 내기라도 했다면 이 홀은 망쳤다는 생각에 이후 플레이도 더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 더블보기로 막으면 아주 잘한 거다. 티샷 한 공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만회할 수도 있으니 샷한 순간 잘못 쳤다는 느낌이 오면 죽지 말고 살기만 하라고 기도한다.


아들은 독립을 꿈꾼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부모일지언정 자신의 인생에 간섭하거나 잔소리하는 것은 싫다. 부모에게 전화하거나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아들은 흔하지 않다. 부모는 아들이 항상 걱정이다. 그렇지만 전화하지 말라는 얘기다. 전화하면 결국 잔소리가 나온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하는 말도 아들은 쓰잘데 없는 말로 들린다.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


세컨드 샷은 보통 티샷 다음에 그린의 홀 가까이 공이 붙기를 바라면서 하는 샷이다. 세컨드 샷을 하는 요령은 그린 주변의 벙커나 해저드에 빠지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추어 골퍼는 보통 핀을 겨냥하지 말고 그린의 중앙을 향하여 샷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은 핀을 향한다. 세컨드 샷이 그린에 오르면 공이 보인다. 벙커나 해저드에 빠지지 않고 그린 주면에 떨어져도 대부분 공이 보인다.


아무리 여권이 신장된 남녀평등사회가 되었다 해도 아들에 비해 딸을 더 걱정하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사기그릇과 딸은 밖으로 돌리지 말라는 속담도 딸의 안전을 걱정하는 말이다. 눈에 보이면 내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딸이 눈에 보여야 항상 안심이 된다. 출가할 때까지...


퍼팅한 공이 홀컵에 들어가면 안 보인다.  홀컵에 공을 얼마나 빨리 넣느냐로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가 골프다. 그래서 퍼팅이 중요하다. 내기골프라면 승부는 퍼팅이 좌우한다. 200야드를 날아가는 티샷이나 3야드 퍼팅이나 똑같이 한 타다.


'마누라'로 불리기를 거의 모든 마누라가 싫어한다. 아내, 부인, 안사람, 집사람 같은 좋은 말 많은데... 마누라를 사전에 찾아보면 '중년의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과 '중년의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허물없이 이르는 말은 부부만 있을 때 사용하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허물없이 이르는 말이라. 그러나 남이 있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이 때는 속되게 이르는 말로 취급된다. 잔소리 듣기 십상이다.


속어 사전이 있다면 거기서 마누라를 찾으면 아마도 '항상 잔소리하는 여자'라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마누라와 잔소리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남자가 많다고 생각한다. 뉴스에 보면 잔소리 때문에 칼부림까지 나기도 한다. 결국 마누라가 안 보여야 한다는 것은 잔소리 듣기가 죽어도 싫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아내와 자식들에게 알게 모르게 잔소리를 엄청 하면서도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아내는 안보였으면 좋겠단 얘기다. 그래서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에도 '자발적 독거'를 하는 선배와 친구들이 제법 있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지고, 많아진 말들은 잔소리 거나 쓸데없는 옛날이야기다. 자신의 옛날이야기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말하지 말고 브런치스토리에 쓰는 것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스토리인양...

 


매거진의 이전글 교회 차량위원회 수련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