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30. 2024

저장강박증

에너지를 비축하고, 사용은 최소화하도록 진화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하면 휴게소 건물 앞 주차공간이 붐빈다. 걷는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화장실이나 식당과 가능한 가까운 곳에 사람들은 주차한다. 나는 주차한 차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가능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가족들은 내 습관을 익히 알지만, 가끔 내 차에 동승한 친구나 지인은 왜 이렇게 멀리 주차하냐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빽빽하게 주차한 곳 부근에 주차하려면 주차할 때도 신경 쓸 것이 많다. 오가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고, 양쪽 주차 간격도 맞춰야 하고, 내리면서 문짝으로 옆 차를 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 차의 옆 면을 찍을 수도 있다. 걷는 에너지나 신경을 쓰는 정신적 에너지나 같은 에너지다. 어느 에너지를 아낄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걷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할지언정 신경 쓰는 에너지 사용은 최소화하고 싶은 사람이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활주로에 터치다운하고 감속하여 유도로에 들어선다. 천천히 게이트로 이동하는 중에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비행기가 게이트에 도착하여 정지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짐을 꺼내려고 일어서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조급 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내려서 공항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공항에서는 줄 서서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기하기 위해, 입국심사받기 위해, 부친 짐 찾기 위해, 세관 통과하기 위해... 그런 기다림을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라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최소화되도록 진화했다. 항상 영양 부족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나는 그렇게 에너지를 아껴 살아남은 선조들의 후손이다.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한 상태, 즉 나태하고 게으른 것이 당연하다. 죄책감 같은 거 가질 이유 없다.




모든 어르신의 희망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소식(小食)하라고 한다. 영양과잉은 영양부족만큼 나쁘다고 한다. 그렇지만 맘껏 먹는 것이 엄연한 룰인 뷔페식당을 가면 과식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돈은 지불한 것이니 가능한 뱃속에 많이 담아야 한다. 그런 뷔페식당들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무제한 삼겹살, 무제한 참치 등의 식당들이 생겨났다.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것도 본능이다. 은행 잔고가 줄어들면 불안하다. 비축된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저장강박증이란 것이 있다. 자신의 공간을 거의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분명 뇌의 일부분이 다친 것이다. 그렇지만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본능이 계속 무엇인가를 확보하고 저장하려는 행위의 근본 아닐까?


곧 비워야 하는 내 교수연구실을 보면 나도 저장강박증 환자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