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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23. 2024

송공패

정년퇴임을 맞으며...


드디어 마침내 정년(65세)이 되어 퇴직합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새로운 것이 많네요.


몸 담고 있던 대학교에서는 총장 이름으로 송공패라는 것을 주네요. 공로패나 감사패는 익히 알고 있으나 송공패라니... 찾아보니 송공(頌功)은 기릴 頌과 공로 功이니 공을 기린다는 뜻이네요. 송공은 주로 학교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랍니다. 회사 등의 단체에서도 사용하긴 하나 학교보다는 덜하다고 합니다. 감사패 만드는 사장님 말씀...


대학교수의 임용(신규임용, 승진, 정년보장, 재계약, 승급, 전보, 겸임, 파견, 휴직, 직위해제, 정직, 강등, 복직 면직, 해임 및 파면을 포함한다)은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총장의 제청으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교원의 인사권은 이사장이 갖고 있고, 총장은 제청권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지요. 따라서 학교 법인의 이사장이 정년퇴직 교원에게 공로패를 주네요.


대학교 교수노조가 몇 년 전에 합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노조가 있는 학교도 있지만 제가 있는 학교는 없습니다. 노조가 없는 대학교는 교수협의회란 임의 단체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교수협의회에서 퇴직교원에게 공로패와 기념품(백화점상품권)을 주네요. 저도 교수협의회장을 해본 적 있지만, 운영하기 참 힘든 단체입니다. 왜냐하면 교수들은 자신이 근로자란 인식이 희박합니다.


대학 교수는 회사의 직원에 비해 상당히 많은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책임시수로 정해진 강의와 학문 발전을 위한 연구, 그리고 사회봉사가 교수의 업무이자 의무입니다. 강의시간은 철저하게 지켜야 하지만(전자출결을 하니), 연구와 봉사는 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휴일에도 하고요. 심지어 자면서 꿈속에서도 하니까요. 연구는 교수의 승진과 정년보장을 받기 위해 필수입니다. 정년보장을 받기 전에는 정말 열심히 연구를 해야 합니다. 책을 집필하거나 논문을 쓰거나 특허를 내는 행위가 모두 연구입니다.


봉사의 영역은 너무 넓어 영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봉사로는 상장회사의 사외이사같이 제법 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분야도 있고, 과제평가 및 논문심사 같이 수당으로 보상받는 분야도 있고, 학술단체의 장이나 이사 같은 직함도 포함됩니다. 학교 내의 온갖 보직을 하는 것도 교내봉사로 취급됩니다. 보직수당이 있지만요. 그리고 연구나 봉사를 위한 시간은 총장이나 이사장의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업무를 상당히 자유롭게 하다 보면 교수는 자신이 근로자라기보다는 개인사업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사업자는 정말 바쁩니다. 보상이 좋은 일을 열심히 찾아 능동적으로 헤쳐나가야 하니까요.


대학교에는 교수상조회란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직원 상조회라고 교원과 직원이 함께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둘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만큼 교원과 직원은 동료란 의식이 별로 없습니다. 매달 상조회비를 모아 회원의 관혼상제시에 상부상조합니다. 정년퇴직으로 상조회를 자연 탈퇴하게 되니 상조회 퇴직금을 주네요.


우리 학교에서는 정년퇴임 기념품으로 금 두 냥의 골드바(?)를 주네요. 금 두 냥이면 지금 시세가 748만 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아냐고요? 이번 달 급여명세서에 기지급금으로 처리되어 있더라고요. 학교나 법인의 경비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정년퇴직수당으로 처리하네요. 모든 수당은 근로소득세 부가 대상입니다. 아마도 38.5%의 세금이 부과될 것입니다. 인간이 살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딱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죽음이고, 나머지 또 하나는 세금이란 말 있습니다.


정년퇴임식은 참석조차 안 했지만( https://brunch.co.kr/@jkyoon/657 ) 퇴임한다니 여기저기서 많은 것을 챙겨주네요. 그런데 처리가 골치 아픈 송공패와 공로패가 세 개나 생겼습니다. 몇 달 전에 제 교수연구실에 있던 상패, 공로패, 기념패 및 학교 보직 맡으며 받은 명패를 몽땅 쓰레기통으로 보냈는데... 며칠이라도 갖고 있다가 처리해야겠지요?


수십 년간 이어져온 관행을 누구도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다 하여도 관행이 바뀌면 말들이 많아지니까요. 이렇게 선배들과 똑같이 정년퇴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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