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물건을 처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모든 물건은 수명이 있다. 더 이상 낡아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싫증이 나서 사용하지 않거나 용도가 없어져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수명이 다한 것이다. 내게는 수명이 다했지만 아직 잔존가치가 있다면 중고로 얼마라도 받고 처분할 수도 있고, 필요한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나눔 할 수도 있다.
9개월 전에 지인으로부터 구입한 10년된 아우디 A7 3.0 TDI( https://brunch.co.kr/@jkyoon/593 )를 처분했다.
아우디를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많다.
구입한 뒤에 아우디를 단골 카센터의 리프트로 들어 올려 속을 들여다봤다. 엔진과 변속기 연결부에서 오일이 샌다. 비치는 정도를 넘어 오일이 맺히는 수준이다. 오일이 비치는 수준은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탈 수 있지만 맺히는 수준은 가까운 장래에 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결부에서 새니 엔진과 변속기 중에 최소한 하나는 내려야 한다. 둘 다 내려 작업을 하면 좋지만 차에서 떼어내는 작업 자체가 큰 수리다. 누유를 수리하려면 변속기를 내려야 한다. 일 년 전에 엔진을 내려 큰 수리를 했다고 했는데 깔끔하게 되지 않은 것 같다. 일단은 그냥 타기로 마음먹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큰 정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타면서도 항상 좀 찜찜했다.
가을에 구입하고 겨울이 오니, 아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 변속기의 변속음이 좀 거칠다는 것을 느꼈다. 토크컨버터가 있는 자동변속기가 아니고, 더블 클러치가 있는 DCT 자동변속기다. 직결감도 좋고 연비도 우수하나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소문난 변속기다. 아침마다 거친 변속음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클러치면에서 미끄러짐이 발생하면서 나는 소리 같다.
2014년형이니 만 10년 되었다. 어느 날 시동을 켠 채 정차한 차 뒤편에서 배기가스 냄새가 아주 역하게 느껴졌다. 단거리 주행만을 계속하면 DOC(디젤산화촉매), LNT(희박 질소산화물포집기), DPF(디젤입자상 물질필터) 등의 배기가스 처리장치의 상태가 나빠진다. 그래서 디젤엔진을 단 자동차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를 가끔 달려서 배기가스 정화장치들을 재생시켜야 한다.
중고자동차를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파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특히 두 가지 면에서...
하나는 아끼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핸들링, 승차감 모두 좋아한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동차는 어느 수준 이상 주기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애물단지다. 운행하지 않고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돈이 제법 든다. 자동차세, 보험료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잔존가치가 계속 떨어진다. 새 차의 초기 3년 내지 5년 동안 떨어지는 잔존가치에 비하면 10년이 넘는 중고 자동차의 가치는 별거 아니다. 보통 구입비용이 1/10 정도로 떨어진다. 이렇게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주요 부위가 고장 나 운행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처럼...
10년이 넘은 중고자동차는 감가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큰돈을 들여 고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국산 자동차에 비해 수입자동차는 수리비가 엄청나다. 특히 독일의 프리미엄 브랜드는 국산 브랜드에 비해 5배 내지 10배까지 생각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다른 하나는 중고자동차딜러를 상대하는 것이다. 개인 간의 거래도 힘들지만 딜러에게 파는 것이 더 힘들다. 새 차는 가격이 정해져 있고 상태도 거의 완벽하고 혹시 하자가 생겨도 자동차회사가 무상으로 다 고쳐준다. 3년 내지 5년은 새 차가 고장 나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다. 모든 공정에는 불량률이란 것이 있고, 좋은 자동차회사란 다른 자동차회사에 비해 불량률을 작게 유지하는 회사다. 새 차가 자꾸 고장 난다면 자동차회사가 무상으로 고쳐주니 돈은 안 들지만 시간(인생)을 소모하고, 자동차를 맡기고 찾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 와중에 심리적인 에너지 소모가 크다. 소위 짜증이 난다.
중고차 딜러란 가능한 싸게 중고차를 사와서(집어온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상품화과정(내외부를 손질하고 심지어 광택까지 내 사고자 하는 사람을 혹하게 하는 과정)에 최소한의 경비를 쓰고 가능한 비싸게 팔아야 한다. 중고차의 외관은 상품화과정을 거쳐 깔끔해지지만 자동차의 속(엔진과 변속기를 포함한 주요 장치)은 알 수가 없다. 자동차를 들어 올려 속을 들여다보면 누유나 누수 같은 결함은 보이지만 엔진이나 변속기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르신의 건강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중고자동차를 사가는 딜러는 자신의 경험으로 눈앞의 자동차를 얼마에는 팔 수 있다고 자신한다. 결국은 중고차를 얼마나 싸게 사느냐가 자신의 능력이다. 중고차 딜러는 파는 능력보다 중고차를 평가하고 사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괜찮은 중고차는 쉽게 팔 수 있다. 따라서 중고차를 사겠다고 온 딜러는 일단 트집을 많이 잡는다. 누유가 있다느니 외판을 교환했다느니 하면서 값을 깎는 딜러를 상대하는 것이 피곤하다.
10만 킬로 이상 달렸거나 10년이 넘은 중고자동차는 당연히 누유가 있다. 오일이 새는 것을 막고 있는 가스켓이나 오링은 사실 소모품이다. 성분에 고무를 포함할 수 밖에는 없는데 고무는 처음에는 말랑말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지고 갈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오일량이 푹푹 줄어드는 심한 누유가 아니라면 상당한 기간을 별일 없이 탈 수도 있다.
자동차 나라인 미국은 자동차대리점이 많은 것을 한다. 새 차도 팔고, 리콜 및 사고 수리도 하고, 일반 정비도 하고, 새 차 사가는 사람이 놓고 가는 중고차도 팔고, 오래 안 팔린 새 차나 중고차를 이용하여 렌터카 사업도 한다. 즉 자동차에 대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자동차대리점에서 일하는 딜러의 수도 엄청 많고, 자동차의 나라답게 그 역사도 오래다. 미국의 유머인지 속담에 그런 말 있다. 자동차 딜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차를 속여 파는 사람이니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중고자동차 시장은 레몬마켓이라고 한다. 중고자동차에 대한 정보의 접근이 비대칭이라 파는 사람은 자동차의 상태를 어느 정도 알지만(사 왔으니까), 사는 사람은 겉모습 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고 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한 시간을 함께 살아보지 않고는 배우자를 알 수 없듯이, 중고자동차의 상태 역시 상당한 시간을 몰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중고자동차를 딜러에게 판 나 역시 중고차 딜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