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운명으로...
1995년에 개봉된 영화다. 최근에 씨네큐브(가깝고 주차가 편하다)에서 혼자 보았다.
이즈음 거의 매일 오전에 배드민턴을 치고 점심을 혼밥 한다. 그리고 가끔 혼영도 한다. 소설책 한 권을 읽는 것만큼의, 아니 때로는 더한 자극과 즐거움을 내게 준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몰입된다. 집에서 ipTV나 유튜브로 보면 몰입이 어렵다. 씨네큐브는 어르신이라고 40% 할인도 해준다.
유럽의 기차 안에서 미국 남자 제시와 프랑스 여대생 셀린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시작한다. 서로 통하는 것을 발견하고 비엔나에서 내려 하루 밤을 함께 지새우는 이야기다. 비엔나에 내린 이유는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제시가 비엔나에서 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비엔나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대화만으로 영화가 채워져 있다.
나는 여주인공 셀린(Julie Delpy)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남자 관객에게 영화의 여주인공은 너무나 우아하고 예뻐 보인다. 여자 관객에게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너무나 멋지고 잘 생겨 보인다. 난 그것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남녀 주인공을 너무나 이상적인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사실 배우들이란 관객과 전혀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이상화된 이미지를 갖게 된 배우들은 많은 팬덤을 갖게 되고, 그 덕에 광고에 출연하여 많은 수입을 누린다. 배우의 그런 이미지는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이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젊은 남녀의 대화는 별 의미 없는(결코 종결될 수 없는) 죽음, 부모, 사랑, 종교, 관계, 남녀 등등 온갖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제시는 약간 냉소적이지만 우수에 찬 표정이 매력적이고, 셀린은 아주 독립적인 페미니스트이다. 그녀의 대사 속에서 그녀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고, 아주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란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진부(?)한 젊은 남녀의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공동 저작이지만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 링클레이터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전 세계 인구가 지금 80억이라고 한다. 40억 명의 남자와 40억 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 한평생 한 남자가 만날 가능성이 있는 여자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길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말고,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을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학교를 함께 다녀 교실에서 매일 볼 수 있었던 아이들, 미팅이나 소개팅으로 마주 앉았던 사람들, 소위 데이트란 것을 했던 사람들, 같은 직장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 사람들,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만나는 사람들, 클럽 같은 동호회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 좁게 보면 수십 명, 아무리 넓게 봐도 수백 명을 넘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운명적인 만남은 우연을 가장해서 이루어진다는 환상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만남의 장소로 비행기, 기차, 고속버스 같은 장거리 이동수단이 될 수 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우연이지만 운명이라고 보고 싶은 것이다. 운명적인 만남을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우연을 운명이라고 착각한다.
영화에는 좋은 대사, 소위 명대사라는 것이 있다. 주인공의 입을 통하여 시나리오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명대사를 확인할 겸 영화의 시나리오 대본을 검색했다. 당연히 쉽게 찾아 다운로드하였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엊그제 본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읽다가 보면 영화의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간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다.
"남자는 나이 들면 여자의 고음이 잘 안 들리고, 여자는 나이 들면 남자의 저음을 잘 듣지 못한다. 이는 나이 든 부부가 서로를 죽이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CELINE: Yeah, I think I’m always so much more happy with books and movies and stuff. I think I get more excited about well-done representations of life than life itself.
CELINE: I think that’s why life is so interesting - because it’s going to end.
JESSE: I think that’s why so many people hate themselves. I mean if we got married, after a few years, you’d hate a lot of my mannerisms, the way I drink a little too much when I’m insecure, the way I tell the same ridiculous, pseudo-intellectual ideas to every couple we have over to dinner. But you see, I’ve already heard all my stupid stories, so of course I’m sick of myself.
CELINE: When you talked earlier about after a few years how a couple would begin to hate each other by anticipating their reactions or getting tired of their mannerisms, I think it would be the opposite with me. I think I can fall in love when I know everything about him - how he’s going to part his hair, or what shirt he’s going to wear that day, knowing the exact story he would tell in a given situation. I’m sure that’s when I’d know I’m really in love.
CELINE: I mean, I feel this pressure to be a strong and independent icon of womanhood and not have it look like my life is only revolving around some guy, but the love of a man and returning that love means a lot to me. I always make fun of it and stuff, but isn’t everything we’re doing in life a way to be loved a little more or something?
고립된 섬에 99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있다면 그들의 미래는?
99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있다면 그들의 미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