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학을 가르치는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이 표현하기를 여행은 ‘종합행복세트’라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명소를 찾아, 근사한 경치를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깔깔거리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암환자들의 소망을 물으면 대부분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얼마 안 남은 자신의 시간을 가족과의 여행으로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버킷리스트의 대부분은 특별한 곳으로의 여행이다.
당신의 버킷리스트에는 어떤 여행이 담겨 있나요?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2024년 9월 추석연휴 다음 날 무려 3주 넘게 카자흐스탄을 스탑오버하며 조지아를 친구와 둘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난 이미 조지아를 혼자 2주 방랑했는데( https://brunch.co.kr/@jkyoon/260 ) 친구가 조지아 간다하길래 같이 가기로 한 것이다. 조지아는 코카서스 산맥의 근사한 경치를 갖고 있다. 물론 5개월쯤 전에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그렇게 길고 멀리 가는 여행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계획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직 여행이 한 달 반 이상 남았는데 친구가 못 갈지 모르겠단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누워계신다. 치매는 예전부터 있었고, 최근에 흡인성 폐렴에 걸리셨다. 미열이 계속되고 매일 16시간 이상 주무신다.
나이가 들면 연하장애가 생긴다.
삼킴 장애라고도 한다. 연하는 음식물을 삼키는 것을 뜻한다. 위로 완전히 넘어가지 못한 음식물은 기도로 넘어가 소위 흡인성 폐렴을 일으킨다. 많은 어르신들이 종국에는 폐렴으로 돌아가신다. 연하장애가 생기면 코를 통하여 튜브를 삽입하여(콧줄이라고도 한다) 유동성 음식물을 위로 직접 공급한다. 그렇게 한동안 버티다 위루관이라 불리는 관을 복부에서 직접 위에 연결하기도 한다. 콧줄이라 불리는 비위관과 위루관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결국 굶어 죽는다.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 마지못해 비위관이나 위루관 장착을 결정한다. 누가? 보호자가 된 자식(들)이...
친구의 사정을 이해한다. 그것도 충분히!!
나도 못 갈지 모른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렇게 긴 여행을 못 갈지 모른다. 문제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내 친구처럼 마냥 기다릴 뿐이다. 시간이 해결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설혹 문제가 해결되면 새로운 문제가 꼬리를 물고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문제를 안고 산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 그래서 항상 아무 때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얼마나 있을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에 마땅한 동반자를 찾지 못하기 때문도 있다. 동반자 없이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부러운(때로는 신박한) 시선으로 보는 이유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그런 용기를 대부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을 떠나려면 온갖 여유(경제적, 시간적, 심적)뿐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다. 살면서 온갖 문제에 봉착하듯이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나 홀로 여행이라면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에 누구나 불안을 느낀다.
여행 중에 으뜸은 허니문이다. 인생의 황금기에 완벽한(?) 동반자와 떠나는 짧은 여행 말이다. 그렇게 황홀한 여행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몇 번씩 간다. 부럽기도 하다. 누구는 한 번도 못 가고 아니 안 가고 죽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허니문을 여러 번 가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런 문제를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에 그렇게 여러 번 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꼭 해보고 싶은 여행 중의 하나는 외손주 도민이랑 둘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제 만 5년 5개월인 도민이가 많이 컸다. 할아버지와 제법 대화가 된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함께 놀아주기는 어렵다.
유치원 여름방학이란다. 일하는 딸이 걱정한다. 낮에 도민이를 누군가 항상 보고 있어야 한다.
"도민아 할아버지랑 일본 여행 안 갈래? 할아버지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도민이 좋아하는 포켓몬 뮤지엄도 데려다줄게."
"아빠 엄마랑 같이?"
"아니. 아빠 엄마는 일해야 해서 못 가고, 일 안 하는 할아버지랑 둘이."
"싫어!" 단칼에 거절한다. 섭섭하지 않다. 왜 그러는지 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잠깐 만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인생을 맡기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마침 사위가 이틀 휴가란다. 그렇다면...
내가 제안했다. 도민이랑 사위랑 셋이 떠나는 2박 3일 일본여행을. 이런 조합의 동반자 여행 쉽지 않다. 나도 첫 경험이다.
다음 주 목금토 가장 항공료가 저렴하고 오후에 출발하는(아침 비행기는 싫다. 밤잠도 설치고 새벽부터 바쁘게 준비해야 해서) 비행기는 일본 규슈의 사가란 곳뿐이다.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중간이다. 일본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사가현에 위치한다. 일본의 지방 소도시로의 짧은 여행을 내가 가자고 했다.
목금토 2박 3일 일본 사가 여행을 떠난다.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사위가 가성비 좋다고 소문난 료칸을 예약하고, 내가 렌터카를 예약하고, eSIM을 구매하고, 여행자 보험 들고, 인천공항 주차장 예약하고 다 준비된 듯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 무엇을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그만큼 사가현은 별 볼 일 없는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도민이한테 잘 보여야 한다. 다음에는 할아버지랑 둘이 여행을 떠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