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주 도민(5년 7개월)과 도은(2년 3개월)이 빠르게 크고 있다. 은퇴 노인의 시간 역시 빠르게 간다. 어르신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그리고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도민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고학년이 되면 안 따라나서거나 못 따라나설 수 있다.
그래서 큰 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카시트 두 개를 설치하고 성인 네 명이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그런 차를...
1993년 봄에 일 년 간의 미국생활(Penn State Univ. 에서의 Post Doc.)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9인승 베스타를 샀다. 미국에서 미니밴을 빌려 대륙횡단여행을 했다. 그 추억이 너무 좋았다. 어린 딸과 아들이 미니밴을 참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 한국에는 아직 미니밴이 없었다(최초의 미니밴 카니발이 1998년부터 시판). 그나마 비슷한 것이 소위 봉고차라는 것이었다. 봉고의 후속모델이 베스타다. 그 당시 신차 가격이 천만 원 정도였는데 50% 감가 된 중고차를 사서 5년 정도 잘 타고 다녔다.
2024년 현재 대상이 되는 큰 차량은 기아 카니발과 현대 스타리아다.
카니발은 승용차에 가까운 미니밴이다. 전륜구동이고 승차감도 승용차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운전도 쉽고 운전 편의장치 역시 승용차와 다를 것이 없다. 시승도 해봤다. 시승차는 3.5 가솔린이었다. 사실 경제성 때문에 나는 디젤을 선호한다. 소음과 진동에 무디기도 하다. 3.5 가솔린은 힘도 좋고 조용하여 크고 널찍한 승용차를 운전하는 것 같았다. 흠이라면 실내 공간의 높이가 낮아 2열과 3열 승객의 개방감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스타리아는 시승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신차 출고에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차가 없어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딜러한테 연락이 왔다. 내가 원하는 옵션을 다 갖춘 차가 취소된 것이 있단다. 원하던 색깔은 아니지만 무난한 흰색이다. 그래서 시승도 하지 않고 덜컥 계약했다.
스타리아의 장점은 2 열시트가 회전한다. 스위블 시트라고 한다. 그래서 2열과 3열이 마주 보고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실내가 광활하다. 천정도 높고 창문도 매우 커서 개방감이 끝내준다. 카시트에 앉아 장거리를 이동해도 손주들이 덜 지겨워할 것 같다. 운전편의장치(ADAS)도 갖추었고 통풍시트나 자동문도 갖추어져 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경부고속도로의 버스전용차선을 탈 수 있다. 물론 6인 이상 탔을 경우지만 버스전용차선을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엄청난 특권이다. 2, 3, 4차선에 빽빽하게 늘어선 승용차들을 내려 보면서 1차선을 고속버스를 따라 신나게 달릴 때마다 스타리아를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특권을 누려본 사람만이 특권이 주는 만족감을 포기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안다. 주말에 한남동에서 시작하는 버스전용차선을 타는 것이 신난다.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단점도 많다.
우선 5.25m가 넘는 전장과 5mm 모자라는 2m의 전폭이 부담이다. 우리나라의 좁은 주차장 폭이 자주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넓은 실내공간을 위한 것이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 딱 2m의 전고(높이)는 지하주차장을 이용할 때 주차장 허용높이를 꼭 확인해야 한다.
일상용으로 사용하기는 매우 불편하다. 워낙 덩치가 커서 주차가 불편하고, 높고 무거운(사륜 디젤은 차량 중량만 2.3톤이 넘는다) 차체 때문에 커브에서 안정감이 떨어진다. 운전석 시트 포지션도 높아서 승용차보다는 버스나 트럭을 운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진동과 소음에는 무뎌 다행인데 승차감은 승용차의 그것과는 차이가 크다. 방지턱을 넘을 때 무거운 차체와 부드럽게 세팅한 현가장치로 인하여 크게 출렁거린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나 학교 주변 도로의 방지턱은 복병이 아니다. 복병이 그렇게 많을 수 없다. 아주 천천히 운행할 수밖에 없다.
손주들은 아주 좋아한다.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큰 차 타는 것을 그 어떤 차 타는 것보다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