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는 나라가 아니다. 남미 대륙 남쪽의 황량한 지역을 일컫는다.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이 안데스 산맥에 가로막혀 서쪽 기슭(칠레)에 비를 뿌리고 건조한 바람이 산맥 동쪽의 평원(아르헨티나)을 거세게 훑고 가는 지역이다. 한국에서는 지구 반대편이라 가장 먼 곳이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가기 힘든 곳이다.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했다는 마젤란의 이름을 기리는 마젤란 해협이 파타고니아 남쪽 끝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고 있다.(마젤란은 이 항해 중에 필리핀에서 전사했다. 그런데 왜 마젤란이 최초로 세계일주항해를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선원들의 일부가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
브루스 채트윈이란 영국 작가가 1974년 11월부터 4개월 동안 파타고니아를 여행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혼자 방랑했다. 그리고 'In Patagonia'란 여행기 비슷한 책을 썼다.
9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파타고니아 여행기는 사진을 찍듯이 순간순간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읽다 보면 머릿속에 사진 한 장이 그려진다. 제법 긴 스토리가 갖고 있는 인물은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서술되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사진으로 끝난다.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을씨년스러운 경치(시각), 쇼팽의 마주르카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청각), 아사도 같은 고기의 맛(미각), 화석과 도살장의 피 냄새(후각) 같은 파타고니아 만의 독특한 감각이 그려지고 느껴진다.
잘 쓴 여행기란 읽는 사람이 자신도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 작가가 지나간 길을 밟고 싶다는 욕구를 생기게 한다. 35박 일정의 5개국(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미단체배낭여행( https://brunch.co.kr/@jkyoon/3 )을 끝마치고 파타고니아만을 다시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마추픽추, 우유니, 이과수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파타고니아는 너무 험해 모두가 기피하는 지역이었다. 원주민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교양 있는 유럽인이 살기에는 저주받은 땅이었다. 버려진 땅이었다. 그렇지만 유럽의 낙오자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많은 유럽인이 대서양을 세로로 횡단하여 파타고니아에 정착했다. 그 와중에 원주민은 거의 몰살당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버려진 땅에서 많은 가축들만이 번성했다. 고기와 털은 대규모 목장을 불러왔다. 에스탄시아라 불리는 대규모 목장을 망하게 한 것은 파나마 운하였다.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해 더 이상 파타고니아를 거쳐갈 이유가 없어졌다. 파타고니아의 가장 큰 항구도시였던 푼타아레나스는 다시 별 볼 일 없는 도시로 전락하였다. 양모 가격이 폭락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모른 채 죽었다.
서구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의 하나는 젊은 영웅이 삶의 어떤 목표 혹은 지고한 가치의 상징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 여행 혹은 방랑의 모티프다. p.394 옮긴이의 말
방랑하기에 파타고니아만 한 곳 없다.
나는 대지주와 가톨릭 세력, 군부 세력이 오랫동안 과점해 오던 아르헨티나에서 군부 지도자이면서 반기득권적이고 친서민적인 후안 페론 같은 인물이 등장한 것을 묘한 미스터리로 여겼지만, 이탈리아계 후손으로 의학도였던 그의 아버지가 테우엘체 원주민 소녀와 만나 낳은 아이가 후안 페론이었다는 점이 그의 훗날의 정치적 역정을 일부나마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p. 398 옮긴이의 말
"아름다워요. 그렇지만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아요."
"저(브루스 채트윈)도 그렇습니다." 에피소드 58
아름답지만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파타고니아를 나는 왜 죽기 전에 꼭 다시 가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단 5일 만에 파타고니아를 횡단해 버려 파타고니아에 대한 헛된 로망을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람의 땅이자 황무지인 땅인데… 잠깐 보기에는 좋지만 정착해서 살기에는 끔찍한 곳일지 모른다.
"그들(야간족)은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철새를 닮았다. 오로지 이동할 때만 행복과 안온함을 느낀다." 에피소드 64에 있는 이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다. 내가 야간족(원주민 부족)의 피를 가졌나 했다. 예전에 쓴 내 브런치를 뒤졌다.
전생에 나는 철새였다. 오직 이동할 때만 행복과 평온함을 느낀다.
https://brunch.co.kr/@jkyoon/315
나는 평온함을 느끼는데 야간족은 안온함을 느낀다고 한다. 안온함은 번역자의 표현이다. 안온함이 평온함과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해서 브루스 채트윈의 원문을 찾아보았다.
"They resemble fidgety birds of passage, who feel happy and inwardly calm only when they are on the move."
안온함은 'inwardly calm'이다. 안으로 밀려드는 고요, 또는 평온이다.
어느 교육학자의 명언이라며 언급된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으로라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