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대 시절부터 인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의 고통과 수모는 불필요한 것으로 믿어왔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던 대니얼 카너먼이 90세에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택하여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지인에 따르면 "카너먼은 죽음을 선택했을 당시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이 양호했다"고 한다. 가족들과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고 스위스로 건너가서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생을 마감했다. 카너먼이 누구인지는 그의 책 '생각에 대한 생각'을 읽은 사람이라면 안다.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일한 사람이다.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밝혀낸 사람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가 스위스라는 것이다.
마지막 몇 년 동안의 고통과 수모가 어떤 것인지 나는 안다. 아니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도 그런 고통과 수모를 겪게 될 것을 알지만, 그것을 제거할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고 산다. 별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 전해 들었다. 83세에 동남아시아 어느 섬에서 겨울을 나다가 돌아가셨단다. 한국의 추운 겨울 세 달을 최근에는 매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지냈다고 한다.(설마 건강보험료가 3달 이상 외국에 체류해야 면제되기 때문은 아니었겠지) 노인은 골프를 엄청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거의 매일 골프 치며 살았다고 한다. 무기명 골프회원권을 갖고 있어 아는 사람들을 청하여 골프를 쳤단다. 그 골프장의 12시 18분 티타임은 매일 그분의 것이었다고 한다. 83세면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 정도를 살았다. 그렇지만 그 나이 되도록 대여섯 시간의 비행기 타는 것이 가능했다면, 남보다 훨씬 긴 건강수명(한국남자 평균 74세)을 누린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바라는 객사를 하셨다.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경험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하면서, 우리가 어떤 경험을 평가할 때, '전체 기간의 평균'보다는 경험의 가장 강렬한 순간(Peak)과 마지막 순간(End)을 중심으로 기억을 구성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을 'Peak-End Rule'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말년의 겪는 고통과 수모가 우리의 전체 인생 평가에 불필요하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즉 인생에서 아무리 길고 좋은 순간이 많았을지라도 마지막 몇 년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이 인생 전체의 평가를 왜곡한다고 봤다. 그런 속담들 많이 있다. "유종의 미"라든지,
"끝이 좋아야 좋은 거지.(All is well that ends well.)"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행이 아무리 즐겁고 좋았어도 마지막에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해서 곤란을 겪으면 그 여행은 최악의 기억으로 남는다. 반면에 여행이 지루하고 별 볼 일 없이 진행되었어도 마지막 일정에서 특별한 재미나 쾌락을 맛보았다면 그 여행은 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내 인생을 가족을 포함한 주변 지인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게 하고 싶은가?
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고 싶은가?
누구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음을 섭섭해하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