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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부모는 있다? 없다?

보살핌과 책임뿐 아니라 존중과 이해!

by 재거니

당신은 나쁜 부모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없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나쁜 부모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천성적이거나 의도적인 나쁜 부모뿐 아니라 자신은 착한 부모라고 생각하는 나쁜 부모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이라고도 하지만, 없느니만 못한 부모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의 '세상에 나쁜 부모는 있다'란 책을 읽었습니다. 신문사의 서평을 보고 바로 구매했습니다. 혹시라도 저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나쁜 부모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irrational belief)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냐고 말하는 사람은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여 자신과 주변 가족들의 인생을 힘들게 합니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인용하여 사랑은 보살핌, 책임, 존중, 이해의 네 가지 요소가 모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을 적용해 보면 자식을 보살피고 책임지는 부모는 많지만, 자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부모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자식을 자신과 떨어져 하나로 완성되어 가는 주체로 대할 줄 모르는 부모는 자식을 애초에 사랑할 줄 모르는 나쁜 부모가 될 소양이 다분하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부모에게 존중받으셨나요?


전 받지 못했습니다. 전 대학생이 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다가 가까운 친구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집에 전화를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대학생인 아들에게 "밥은 나가 먹어도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도그마(?)를 강요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이 안식처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집 밖에서만 숨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수년 전에 둘이 점심 식사를 하며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대학생인 아들을 친구집에서 조차 자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냐고? 무슨 이유로 그렇게 아들을 괴롭혔냐고? 연로하여 아들 손을 잡지 않고는 걸음을 옮기기 힘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윤리와 철칙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제가 힘든 대학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시대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는데,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자식을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두려는 가부장적 마음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4학년 2학기에 저는 가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제 생일날에 말입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충분히 사랑했다고 착각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하는 부모들 말입니다.


동물의 왕국이나 폼페이의 유적 발굴 현장을 비롯한 많은 사건사고에서 자식을 위하여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는 암컷들이 있습니다. 그런 모성애를 모든 엄마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미신 아닐까요? 그런 엄마도 있지요! 그런 아빠도 있고요. 그렇지만 모든 부모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당신의 부모의 그런 사랑을 의심하는 당신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죄책감을 느낄 이유 없으니까요. 아이는 부모의 진정성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했습니다. 이해가 되니 제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졌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는 없지만 제 트라우마가 상당히 치유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와 제 자식들과의 관계를 떠올렸습니다. 부모를 반면교사 삼아 난 잘하고 싶었는데... 잘했을까? 혹시 나 역시 나쁜 부모 아니었을까?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이즈음 읽는 책마다 제게 감동을 줍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먹먹해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p.s.: 나이가 들어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하는 노인도 있지만, 눈물샘에서 분비된 눈물이 눈 표면을 적신 뒤 눈물점(lacrimal punctum)으로 흘러 들어가 눈물주머니를 통과하여 코안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런데 노화로 인하여 눈물점이 막히면 갈 곳을 잃은 눈물이 눈가에 고입니다. 이 증상을 의학적으로 눈물점 폐쇄 또는 눈물길 폐쇄라고 합니다. 제가 이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눈가가 촉촉해지면 전 기분이 좋습니다. 실존의 엄숙함이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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