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파타고니아 출발하기 일주일 전 일요일이었다. 대학동기 넷이서 용인의 어는 골프장에 모였다. 둘은 내년이 칠순이고, 나와 다른 한 친구는 후년이 칠순이다. 곧 칠순이 되는 노인네 넷이 몇 년 만에 만나 낄낄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골프를 마치고 저녁 먹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내가 질문을 던졌다.
“남미 대륙의 끝 파타고니아를 여행 중인데, 만약 장모님의 부고를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친구가 물을 것을 물어야지 하면서 당연히 빨리 비행기표 사서 와야지 한다. 난 속으로 얘가 파타고니아가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구나 했다.
“파타고니아는 비행기 한 번 타고 올 수 있는 지역이 아니야! 파타고니아란 옷 브랜드는 알지? 브랜드 상표의 늘어선 산들의 가운데 있는 봉우리가 '피츠로이'야. 피츠로이는 엘 찰텐이란 작은 마을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지. 만약 트레킹 중에 메신저로 부고를 받는다면 일단 엘 찰텐으로 바로 하산해야겠지. 그리고 자동차로 3 시간이 소요되는 엘 칼라파테로 와야겠지. 엘 칼라파테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직항 편이 있지만 매일 있지는 않을지도 몰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전 세계로 흩어지는 비행기들이 많으니 최단 시간의 여정을 찾을 수는 있을 거야. 비행기를 최소한 한 번 내지 두 번을 갈아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겠지. 잘하면 56 시간에 올 수도 있겠지만 72 시간이 넘을 가능성이 더 높지. 72시간이면 3일장이 끝나. 발인도 끝난 뒤에 도착하겠지."
"그럼 오려고 했다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하하. 이 나이에 시늉이라니. 시늉이란 실제로는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하는 거잖아. 시늉은 다 표가 나! 사람들 눈에 다 보인다고. 이 나이에 무슨 그런 시늉을... 그리고 그렇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오다가, 아니면 시늉하다가, 너나 나 같은 칠순 노인네는 심장마비 와서 오는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어. 그렇잖아도 이즈음 부정맥(발작성 상심실성 빈맥)도 있는데. 그러면 내게 부고를 알린 사람(아내 거나 자식)이 평생 내게 알린 것을 후회하며 살겠지! 시간 맞춰 오지도 못할 사람을 아예 함께 저승 보냈다고..."
생각들 하느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왜? 장모님이 편찮으시냐?"
"장모님이 32년생이니 93세야. 지난달 온 가족이 호주 캠핑카 여행 중에 장모님이 갑자기 열이 올라 막내 처제가 응급실 모시고 가서 열흘인가 입원하고 퇴원하셨지. 처제가 장모님 입원시키고 언니는 비행기 타고 바로 와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준비하라고 알린 거야. 어르신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우리도 어르신이니 우리도 마찬가지지. 파타고니아가 너무 좋으면 안 올 마음도 있지만, 난 내가 파타고니아에서 못 올 가능성도 있다고 마음먹고 떠나는 거야."
"그럼 가지 마! 그렇게 위험한 곳을 왜 가는 거야?"
"하하. 파타고니아가 위험한 곳 아니야. 어르신인 내 심장이 위험한 거지. 10년 전에 그룹배낭여행 패키지로 남미 대륙을 35박 동안 온갖 곳을 훑었지. 그 넓은 파타고니아를 단 5박 만에 도는데 그때 난 너무 아쉬웠어. 파타고니아는 꼭 다시 와서 느긋하게 한 달 이상 지겹도록 있다가 가겠다고 마음먹었어. 이제 은퇴하고 그 기회가 온 거지."
"겨우 그런 이유로 그렇게 멀리 위험을 무릅쓰고 간다는 거야? 완전히 지구 반대편이잖아!"
"겨우 그런 이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내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일본의 한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90세 이상의 할아버지들한테 인터뷰한 내용을 읽은 적 있어. 90년 이상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뭐냐고 어르신들한테 물었지. 그러자 많은 일본의 할아버지들이 그랬대. 좀 더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극적으로 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그렇게 산 친구들은 다 먼저 갔는데, 그렇게 안 산 자기는 요양원에서 죽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