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타 아레나스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버스로 딱 3시간 거리다. 길도 좋다. 파타고니아의 풍광은 내겐 근사하지만 아주 단조롭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새 버스가 아주 쾌적하다. '옆자리가 비었으니 쾌적할 수밖에.' 비바람 치다가 해가 잠시 반짝했다가 반복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6박이나 할 예정인데, 하루를 버스 타고 푼타 아레나스 당일 왕복을 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왕복 15,000페소에 파타고니아 랜드투어라 생각하고.
푸에르토 나탈레스 버스터미널은 푼타 아레나스에 비해 훨씬 크다. 파타고니아 관광객 모두(?)가 방문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베이스캠프라. 버스회사들도 여럿이고 터미널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느 책에서 읽었다. 남미 여행 중에 버스터미널에서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큰 배낭을 도난당하고, 몸에 두른 작은 가방 하나로 남미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버스터미널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여행하는데 필요한 짐은 손가방 하나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10년 만에 혼자 돌아왔다. 10년 전에는 27명의 단체배낭패키지로 왔었으니. 버스터미널에서 예약한 숙소까지는 1.8km다. 애매하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도시에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캐리어 끌고 걸었다. 작은 캐리어라 끌만큼 아주 가벼운데, 비바람이 세차게 불며 손이 시리다. 푼타 아레나스보다 더 춥다고 느껴진다. '이런 날에 Base Torres Excursion을 하는 사람은 엄청 고생이겠네. 난 언제 하지? 그거 하려고 온 건데.' 날씨가 이모양이라 그런지 오후 두 시인데, 길에 사람도 없고 도시 전체가 아주 썰렁하다.
‘이런 곳에 누가 살고 싶을까?'
간판이 없어 어렵게 찾았다. 'La Casa del Profesor'란 숙소를 예약했었다. Profesor가 운영하는 숙소가 아니고, 2002년에 지어진 교사회관이란다. 건물에 붙은 명판을 번역해서 알았다. 워크숍이나 세미나 용도의 넓은 방(Salon)이 있고, 화장실 붙은 방 4개가 전부인 듯. 영어가 1도 안 통하는 아줌마와 번역기를 사용하여 간신히 의사소통했다. 오늘 손님이 나 혼자인가 했더니 영국인 부부가 왔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다 마치고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로 가려는데 도로가 폐쇄되어 급하게 숙소를 구해서 왔단다. 영어는 참 잘하지만 스페인어는 전혀 못해 숙소 아줌마와 번역기를 사용하기는 나와 마찬가지다. '영국인이라 좋겠다. 영어 하나로 평생을 먹고살 수 있으니.'
숙소 도착해서 아줌마가 만들어준 햄치즈 샌드위치 한 조각과 홍차 한잔으로 점심을 해결했으니 저녁은 제대로 먹어야 한다. 구글맵에서 'Japanese restaurant'이라고 검색하니 제법 여러 개가 뜬다. 'My Sikdang'이란 틀림없는 한국 음식점이 있다. 이렇게 기쁠 수가. 분명 구글맵에는 월요일 지금 영업 중이라는데 힘들게 찾아가 보니 문이 닫혀 있다. 이렇게 슬플 수가. 한국 식당이 있다는 것에 흥분하여 백업도 안 찾았는데...
기쁨과 슬픔은 자주 교차한다는 진리를 또다시 절감했다.
나라 구경, 사람 구경만큼 나는 자동차 구경을 좋아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아주 오래된 자동차 말고, 도로를 지금 굴러다니는 자동차 구경을 즐긴다.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차도 좋지만, 10년 내지 20년 된 세월을 품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알아보는 것이 재미있다. 덩치 큰 미국차들을 품질 좋고 연비 좋은 일본 자동차들이 밀어냈다. 그런 일본 자동차들과 모양 좋고 내구성도 그다지 뒤지지 않는 한국 자동차들이 가성비를 무기로 경쟁한다. 칠레에 한국자동차들이 정말 많다. 20년 넘은 투싼, 스포티지, 싼타페 그리고 쌍용차들이 많이 보인다. 30년은 되었을 무쏘와 렉스턴이 자주 눈에 띄고, 심지어 50년 가까이 되었을 제미니도 보았다. 한국에선 이미 멸종된 자동차들을 이곳 파타고니아의 도로에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차, 일본차, 한국차가 쥐고 있던 시장(칠레에서 독일차는 보기 드물다.)을 지금 중국자동차들이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 깨끗한 새 중국차들이 자주 보인다. 한국에선 보지 못하는 CHANGAN, HAVAL, CHERY, GEELY, Great Wall, Futon 등의 한국차와 디자인 감성이 유사한 중국자동차들이 곧 칠레 시장을 석권하지 않을까 싶다. 보기에 너무 멀쩡하다. 브랜드 로고를 일본이나 한국 로고 붙이면 웬만한 사람은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디자인이 평준화되었다. 특히 볼륨카라는 대량생산해서 많이 팔아야 하는 차들은. 자동차 디자이너였던 아들이 4년 공부하고 6년 디자인 현장을 뛰고도 쉽게 자동차디자인을 포기(버렸다고 하는 표현이 맞지 않나?) 한 것이 이해가 된다.
자동차 디자인에 미래가 없다고.
사실 미래가 보장된 것이 뭐가 있을까? 한 10년 지나고 보면 다 미래가 없지.
AI는 얼마나 갈까? 지금 잘 사용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