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을 잊고 싶은 것이다.
아들과 함께 레저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는 것이 내 취미가 되어버렸다. 올해 3월부터 벌써 10번이 넘게 둘이서 출조하였으니 한달에 평균 두번 정도이다. 아들과 바다낚시를 한번 간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골프를 한번 라운딩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체력을 요구한다. 보통 토요일 새벽의 출항을 위해 금요일 아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아들의 기숙사(경기도 향남)에 도착하고, 출항할 대천항이나 비응항으로 보트를 실은 트레일러를 끌고 이동하여 항구 근처에서 숙박한다. 다음날 새벽부터 오후 두세시경까지 정신없이 낚시를 하고, 아들의 기숙사를 거쳐 토요일 밤에 집에 오면 사실 난 녹초가 된다. 엄청난 체력이 소모됨을 느낀다. 바다에서의 보트 운전은 선장인 아들이 다 하지만 보트를 차에 매달고 끌고 가는 트레일링 운전은 내가 다 한다. 일종의 업무분장이 이루어졌다.
지난 추석날에는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새벽의 일출과 함께 출항하여 입파도에서 쭈꾸미 낚시를 했다. 이즈음이 쭈꾸미 시즌이라 몇분마다 낚시바늘에 쭈꾸미가 걸려 올라온다. 너무 쉽게 잡히는 쭈꾸미를 보며,
"우석아, 이게 오락이냐? 노동이냐? 난 노동 같은데... 우리가 낚시를 노동으로 하면 어부가 된 것이잖아? 쭈꾸미 건져 올리느라 손목이 다 아프다. 우리 광어 잡자!"
"좀 더해. 광어는 못 잡을 수도 있으니 잘 잡히는 쭈꾸미라도 충분히 잡고 나서 옮기자."
"충분히가 몇 마리냐?"
"40마리쯤 잡은 것 같으니 열마리만 더 잡고 자리를 옮겨 광어 잡자."
"예, 선장님."
결국 입파도에서 서쪽으로 한참을 나간 풍도, 승봉도, 대이작도 부근을 다섯시간 이상 돌아 다니며 광어를 노렸다. 그러나 우석이가 37센티 광어 겨우 두마리만을 잡았다. 매번 출항할 때마다 점점 더 먼 섬으로 나가고 있다. 멀리 갈수록 낚시꾼들이 당연히 적다. 더 큰 고기, 더 많은 고기를 잡을 것 같은 기대로 여분의 연료탱크까지 꽉꽉 채워 출항한다.
낚시나 골프나 유사한 속성이 많다. 우선 하기 전에 준비가 많다. 보트의 상태를 완벽하게 정비해 놓아야 하고, 기름을 채우고, 잡고자 하는 고기에 맞춰 채비를 준비하고, 간조시간과 파도의 높이를 확인하고, 바다에서 먹을 식량과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골프는 마음에 맞는 네명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아야 하고, 장비와 공 뿐 아니라 날씨와 기온에 맞춰 옷가지 뿐 아니라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오늘은 큰 광어가 잡힐 것 같다는 기대 속에 시작하고, 오늘은 골프가 잘 되어 친구들을 놀라게 하고 나 자신도 놀라는 일이 벌어지길 기대한다.
하는 동안 모든 것을 잊는다.
오직 큰 고기의 입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골프클럽면의 센터(sweet spot)에 공을 맞추고 작은 구멍에 공을 넣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한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을 만큼 집중한다. 끝날 때는 아주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항상 아쉽다. 종일 바다에서 어부보다 더 열심히 전투낚시를 했지만 저녁의 안주거리도 잡지 못한 날이 많고, 골프도 항상 기대 만큼 안되는 날이 대부분이다. 밤에 완전히 소진된 머리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며 다음 번에는 더 잘 할 것임을 다짐하고 각오하며 곯아 떨어진다.
낚시나 골프나 모든 취미가 이와 같을 것이다. 많이 준비하고, 기대 속에 시작하고, 하는 동안은 너무 집중하여 자신을 잊을 정도이고, 끝나면 아쉽지만 다음에 더 잘될 것이란 각오 속에 푹 잘 수 있다. 아들은 낚시가 더 좋단다. 그날 잡은 고기를 안주 삼을 수 있어서 더 좋단다. 그러나 골프를 치고 나서는 같이 라운딩한 동료들과 그 날의 플레이를 안주 삼는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결국 취미란 돈쓰고 시간쓰고 온갖 감정과 체력 또한 소진하면서 하는 동안 자신을 잊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잊고 싶은 것이다. 무아지경에 조금이라도 더 자주 있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