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풍장

섬에 들어온 자동차는 섬을 떠나지 못한다.

by 재거니

파타고니아는 안데스의 경관과 위도가 높아 만들어진 삭막한 풍경이 매력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날씨가 혹독하다. 특히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분다. 그래서 거주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방목되는 가축(양과 소, 간혹 말)들만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해가 긴 여름에는 여행객들이 찾아온다. 며칠 뒤가 파타고니아는 하지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땅끝이라는 이곳 푸에르토윌리엄스는 새벽에 거의 0도까지 내려간다. 낮에도 10도 전후인데 바람이 심한 게 부는 날(거의 매일)은 체감온도가 영하라고도 한다. 장작난로 곁을 떠날 수가 없다. 비행기 탈 때 부치는 짐 없이 방랑하려다 보니 옷도 별로 챙기지 못했다. 간신히 생존하고 있다.


풍장은 죽음에 이른 생물의 시신을 비나 바람에 맞히는 장례 의식을 말한다. 시체를 지상에 노출시켜 자연히 소멸시키는 장례법 혹은 사체의 처리방법이다.(위키피디아)


풍장이 떠오른 이유는 파타고니아에 풍장 중인 자동차들이 많다. 푸에르토나탈레스, 푼타아레나스 그리고 푸에르토윌리엄스를 지나다 보면 길가에 또는 집 안팎으로 버려진 자동차들이 유난히 많다. 한국 같으면 저렇게 버려진 자동차는 안전과 미관에 문제가 있다고 구청에 누군가 신고할 테고, 일단 구청이 끌고 가 처리한 뒤 주인을 찾아 과태료를 물리거나 구상권 청구를 할 것 같은데 칠레는 아직 그런 제도가 없는듯하다. 자기 집 앞에 세워두고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있는 자동차도 있고, 골목길에 세워져 있는데 타이어는 이미 온데간데없고 심지어 범퍼나 본넷이 없는 자동차도 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Refugio El Cauque'에는 울타리 안에 자동차가 여섯 대, 울타리 밖에 한 대 등 모두 일곱 대의 자동차가 있는데, 그중에 굴러가는 것이 가능한 자동차는 한 대뿐이다. 신기한 것은 버려진 자동차 여섯 대중에 한국의 1톤 트럭이 두 대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더블캡이라고 하여 다섯 명 내지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트럭이다. 나머지 네 대는 일본산 SUV이고, 유일하게 굴러가는 SUV는 미국산이다. 뒷 트렁크 문짝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어느 딜러가 팔았다는 스티커가 아직도 멀쩡하게 붙어 있다.


칠레의 땅끝 섬인 푸에르토윌리엄스까지 자동차가 오려면 한두 번 이상의 페리선을 타고 긴 여행을 했을 것이다. 신차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중고차로 들어왔을 것이다. 자동차의 내구수명을 보통 10년으로 보지만 이 차들은 대체 언제 이 섬에 상륙했을까? 궁금하네. 그리고 얼마나 달린 후에 저렇게 방치되어 있을까? 풍장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섬에 들어온 자동차는 섬을 떠나지 못한다.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정 나면, 섬을 떠나는 비용이 고철값보다 비싸니 저렇게 버려지는 것이다.


지금의 자동차 특히 테슬라 같은 전기자동차는 기계장치라기보다는 전자제품이다. 전자제품의 수명은 잘해야 10년이다. 그런 자동차는 파타고니아에서 볼 수가 없다. 여기서 흔하게 마주치는 자동차는 20년은 족히 되었을 한국이나 일본 자동차들이고 그나마 깨끗한 신차들은 반 이상이 중국산이다. 자동차 회사가 단종된 자동차 부품의 의무공급기간은 한국에서는 8년이다. 물론 많이 팔린 차들은 그 이상 부품을 공급한다. 그렇지만 20년 가까이 된 차들의 새 부품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계장치는 전자제품보다는 오래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내구성이 좋은 독일산, 일본산들은 거뜬히 20년 이상을 버틴다. 이즈음 한국산들도 내구성이 괜찮다는 것을 파타고니아에서 느끼고 있다..


오래되었지만 잘 달리다가 고장 난 자동차의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 그리고 특히 파타고니아와 같이 외진 지역에서는 부품을 받기도 어렵고, 유능한 정비사를 만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차종이 단순하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파타고니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종류는 어마무시하다. 다양한 자동차, 오래된 자동차를 유지하기 정말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저렇게 방치되어 풍장 중이다.


풍장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우리나라 신안군 여러 섬에서 전통적으로 풍장을 행했다는 것을 어디서 보았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시신을 노출시켜 자연분해를 기다린 뒤에 유골만 수습하는 것이다. 인도의 조로아스터교는 높은 탑 위에 시신을 안치하여 독수리 등의 새가 살점을 처리하고, 햇빛과 바람에 노출되어 남은 뼈는 아래로 떨어졌다던데...


자동차가 풍장 중에도 누가 부품이 필요하다고 하면 뜯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뜯겨나가고 몸체만 남아 있다가 지구의 종말을 함께 맞지 않을까? 여기저기 버려진 자동차들이 유난히 긴 세월을 풍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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