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묵고 있는 동안 다른 통나무 집에 혼자 묵고 있는 서양 노인(?)이 있다. 시내에 나가고 싶어 집주인 알투르에게 차편을 부탁했더니 서양 노인이 자기 차 갖고 시내 나가니 함께 가란다. 그렇게 우연히 그와 조우했다. 이름은 Kris, 66살이고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산다고 한다. 직업은 건축가고 아직 일하고 있단다. 깔끔한 신사답게 생겼다. 아내가 칠레 산티아고 출신이라 크리스마스를 산티아고에서 보내려 왔다가 아내는 산티아고에 남고 혼자 여길 왔단다. 내일 페리 타고 푸에르토윌리엄스를 떠난단다.
시내 카페에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항구가 보이는 우아한 카페였다. 푸에르토윌리엄스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깔끔한 카페다. 내가 만약 푸에르토윌리엄스 시내에 숙소를 정했으면 아마 매일 들렀을 것이다. 멋진 전망과 깔끔한 주인아줌마(심지어 영어도 한다)를 보러...
https://maps.app.goo.gl/NiUJWsmj5DQL1cJj6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나는 크리스에게 묻고 말았다. 칠레 아내가 몇 번째냐? 두 번째란다. 첫 부인은 잔소리가 너무 심했고, 칠레 아내는 너무 열정적이란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바리노섬은 직사각형의 가까운 형상이다. 긴 변이 동서로 나 있는 비글 해협에 면해 있다. 중심지인 푸에르토윌리엄스는 긴 변의 가운데 아니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있고, 긴 변의 제일 서쪽 끝에 Puerto Navarino가 있다. 푸에르토윌리엄스에서 약 50km가 떨어져 있다. 함 가보고 싶으나 걷기는 불가능하고 대중교통도 없으니 차를 렌트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크리스가 주인장 알투르의 차를 렌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크리스는 오늘 아침 떠났길래 알투르에게 물었다. 니 차를 렌트해서 푸에르토나바리노에 갔다 오고 싶다고. 좋단다. 반나절에 40,000페소, 종일은 70,000페소 휘발유는 원래대로 채우고. 그렇게 키를 받기는 했으나 그 차 상태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여러 번 타봐서...
Jeep브랜드의 Liverty다. 시동을 켜면 계기판에 온갖 경고등이 사라지지 않는다. 타이어경고등, 엔진체크등, ABS경고등, ETC경고등, 에어백경고등뿐 아니라 사륜구동 관련 경고등도 두 개나 항상 켜져 있다. 심지어 시동을 걸 때는 오일 교환하란 메시지도 계속 나온다. 이런 차를 갖고 왕복 100km를 무사히 갔다 올 수 있을까 걱정되네...
잡석이 깔려 있는 비포장도로길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시속 40 내지 50km로 달릴 만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패인 곳이 있으면 핸들이 살짝 돌아간다. 살짝 돌아가는 것이 항상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아무래도 크다. 그렇지만 돌아가지 못하게 꽉 잡으면 패인 곳의 그 충격을 자동차의 스프링을 비롯한 현가장치가 온전히 다 버텨야 한다. 그렇다면 핸들을 꽉 붙잡고 자동차의 하체가 모든 충격을 받게 하는 것이 좋을까? 가볍게 잡아 핸들이 어느 정도 노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현가장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것이 좋을까?
별 상관없을지 모른다. 하체를 충분히 강건하게 설계하고 제작하였다면...
난 가볍게 잡고 핸들이 어느 정도 도는 것을 허용했다. 페이스북에서 읽은 것을 생각하면서.
베이비부머세대부터 모든 세대 중에 'Parenting'을 제일 못한 세대가 어느 세대일까? 베이비부머세대란다. 왜? 베이비 부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생존관 포함)을 자식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엄청 강요했단다. 왜? 베이비 부머들은 모든 문제에 항상 정답이 있고, 부모는 정답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니까. 그래서 자식들이 정답을 못 찾고 헤매는 꼴을 참지 못했단다. 그 글에 내가 어느 정도 공감한 것 같다.
핸들을 가볍게 잡듯이 자식이 어느 정도 헤매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운전하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나바리노섬의 북쪽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결국 끝까지 갔다. 푸에르토나바리노가 가까워오자 한시 방향에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가 보인다. 멀리서 보니 제법 큰 도시 같다. 주민은 5만여 명이라지만 체류하는 관광객이 족히 몇 만은 될 거다. 그 많은 사람이 먹고 자려니 클 수밖에...
해안길을 따라 한 시간반을 달리는 동안 마주친 차량은 다섯 대, 그중의 한 대는 오른쪽 길 밖으로 처박은 차량이다. 언제 사고 났을까? 겨울 눈길에서 아니면 저기에 박을 일 없을 것 같은데.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푸에르토나바리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 몇 개만 덩그러니 있고, 선착장은 지금 공사 중이다. 맞은편 우수아이아가 잘 보일 줄 알았는데 암초와 섬으로 가려 전망도 하나 없다. 기대하고 왔는데...
사진 몇 장 찍고 차를 돌려 바로 숙소로 왔다. 모르는 길을 처음 갈 때와는 달리 오는 길은 금세 온 것 같다. 초행길은 엄청 긴장하지만 되돌아오는 길은 익숙하고 편안하다. 신줏단지 모시듯 자동차를 정말 살살 몰았다. 신줏단지가 아니라 폭탄이다. 언제 퍼질지 모르니...
전화기도 터지지 않는 길을 폭탄과 진배없는 차량을 몰고, 100km를 운전하고, 얼른 반납했다.
크리스는 뒷 타이어가 주저앉아 엄청 고생했다고 했다.
https://maps.app.goo.gl/q3mMyVaCY1GBsow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