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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03. 2016

딸의 결혼식

결코 보낸 적도 없고 보낼 수도 없다.

"오늘의 신부를 아내가 임신했을 때 제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가 대학 입학할 때까지 제 생명을 지켜주셔서 아빠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을 넘어 은혜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일주일이란 시간에서 가장 황금시간이 바로 토요일 지금입니다.

이런 귀한 시간에 만사 제쳐두고 이 결혼의 증인이 되고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계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황금시간 내주신 분들께 실례되지 않도록 신랑신부가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둘이 함께 시작하는 새로운 항해를 앞으로도 성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 인생의 큰 과제를 하나 끝내는 기분입니다.

다시 한번 귀한 시간 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결혼식장에서 신부아버지로서 감사 인사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앞부분에서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결국 준비한 인사의 반도 못하고 서둘러 끝맺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어디가 얼마나 아팠냐고 물어왔다. 심지어 처제들까지 형부가 어디가 아팠냐고 묻는다. 하긴 거의 30년 전의 일이다. 내 인사말에 신부인 지민이의 친구들은 다 울었다고 한다. 신부도 울뻔 했으나 드레스를 잡아주는 아줌마가 바로 옆에서 "울면 안돼요! 절대 울면 안돼요! 신부화장 지워지면 안돼요!" 하며 울지 못하게 해줬단다.

주례 없는 결혼식.
신부아버지가 신부 손을 잡고 입장하지 않는 결혼식.
주례사를 대신하여 축사를 신부 동생이 PPT로 하는 결혼식.
신랑 동생이 축가를 부르는 결혼식.
양가 온 가족 행진으로 끝 맺는 결혼식.

그렇게 바라던 진부하지 않은 결혼식을 끝냈다.

콘서트홀에서의 결혼식은 우선 하객들의 시선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신부 동생의 축사는 의미있고, 아주 재미있었다. 나는 내 아들이 PPT 발표를 그렇게 잘하는지 몰랐다. 학교 운동장은 주차장으로서 아주 여유 있었고, 새로 지은 보성고 100주년 기념관의 로비는 우아한 공간이었다. 식장의 단점이라면 피로연장인 학생식당이 좀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결혼식 잘 끝냈습니다.

딸을 시집 보내는 아빠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결코 보낸 적도 없고, 보낼 수도 없습니다.

아마도 딸이 결혼하여 멀리 간다면 좀 서운할 듯 한데 딸과 사위가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신혼집을 얻었습니다. 사돈댁은 경남 밀양입니다. 집에서는 예전처럼 매일 보지 못하겠지만 자주 만날 것 같아 서운하지 않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신혼여행 하와이로 간다고 아내와 같이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 축도(예배는 축도로 끝납니다.)는 '또 한주간의 생을 부여 받고 저 험한 세상으로 흩어져 나가는 우리 성도들의 머리머리위에
은총을 내리사.....'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한주간의 생에서 가장 황금시간인 토요일에 만사 제치고 참석해주신 하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축하해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 인생의 큰 과제를 하나 막 끝낸 기분입니다.
큰 과제를 수행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감사할 뿐입니다.


여한없는 생을 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재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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