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없다면 정체성도 없다.'란 문장을 줄리언 반스라는 영국 소설가의 마지막 소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보았다. 한참 생각하며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정체성은 존재이유다. 아니 존재 자체인지도...
"기억이 존재 자체다!"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치매가 특히 무서운 것은 정체성을 함께 잃어가기 때문이다. 기억이 있어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기억의 집합체가 지금 현재의 나다. 좋은 기억, 슬픈 기억, 기억의 성격은 상관없다. 기억은 객관적이고 아주 중립적인 단어다.
그렇다면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기억은 머리가 기록한 사실이고, 추억은 가슴이 기록한 감정이다. 추억은 기억이라는 데이터에 '나만의 감정'이라는 색칠이 더해진 상태다. 그래서 추억은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 어떤 기억은 바로 추억이 되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되기도 한다. 기억이 곧 정체성이고,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느냐가 정체성의 가치다. 얼마나 많은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느냐가 인생의 좋고 나쁨(별 볼일 없음)을 가르는 기준이란 생각이다. 그만큼 추억이 중요하다.
난 추억을 버리지 못하는 '추억강박증' 환자다.( https://brunch.co.kr/@jkyoon/40 )
흐려져 가는 기억이나 추억을 다시 생생하게 재생하는 것은 사진과 물건이다.
사진은 순간을 박제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뭔가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뭔가를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난 내 마음을 사진 찍지 못하니 주변이라도 찍는다. 지금의 이 감정을 나중에 혹시라도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되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수시로 아무 때나 찍는다. 어떤 날은 사진이 많고, 어떤 날은 사진이 없다. 사진이 없다는 것은 그날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다는 말이다. 습관으로만 가득한 별 볼일 없는 날이었다는 얘기다.
공항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거나,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 나는 아이폰의 사진 보관함을 연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한다. 연속으로 찍힌 사진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남기고 삭제하거나, 내 기억 속에서 지워도 전혀 문제없는 사진(단기 기억을 보조하기 위한 것)들을 삭제한다.
이즈음 내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갖고 있던 기억 중에 일부가 희미해지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기억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슬픈 기억을 망각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낼 기력을 준다고도 하지만, 난 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슬프다. 슬픈 기억도 추억이다. 나쁜 추억이라도 버리고 싶지 않다. 슬픈 추억이 만들어졌던 시간도 내 귀한 인생이었다.
나는 사용하던 물건을 참 버리지 못한다.
3달의 파타고니아 방랑길을 떠나며 경량 슬리핑백을 캐리어에 넣고 집을 나섰다. 경량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들고 떠난 것 중에서 가장 부피가 크다. 혹시 노숙(?)에 버금가는 숙소를 마주칠까 불안하여 들고 나온 것이다. 경량슬리핑백은 오래전부터 내 방 옷장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98년 인도배낭여행을 떠나며 샀던 것이다. 오래되기도 했고 그 사이 몇 번 세탁했더니 오리털이 스멀스멀 여기저기서 시도 때도 없이 기어 나온다. 2달을 계속 들고만 다니다 리오가예고스의 '호텔 파타고니아'에서 결국 버렸다.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는데...
리오가예고스에서 트렐류를 거쳐 라스그루타스를 가야 한다. 라스그루타스는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여름휴양지다. 한국의 해운대 같은 곳이다. 비행기 탑승 시 부치는 짐 없이 방랑하기 위해 옷가지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반바지를 비롯한 여름옷을 사야 할 것 같은데, 캐리어의 여유공간이 없다. 여유공간을 만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마침내 슬리핑백을 버렸다.
내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물건이 갖고 있는 기억도 함께 버려지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억이 아니고 추억일 수도 있다. 모든 물건에는 기억이 있고, 상당히 많은 물건은 추억을 갖고 있다. 기억과 추억이 차이는 종이 한 장일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이 추억이 된다. 추억은 보전해야 하지만 기억은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는 것에 난 동의하지 못한다.
사진이나 물건보다도 기억이나 추억을 더 생생하게 재생시키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쓴 이 브런치글이다. 이번 방랑에서 실감했다. 10년 만에 남미 대륙을 다시 밟으니, 10년 전의 기억을 찾기 위해 그때의 브런치를 다시 찾아본다. 한두 장의 사진과 그때를 기록했던 내 브런치가 내 추억을 단단하게 재생한다. 그때의 감정과 그때의 나 자신의 수준(?)도 새롭게 느껴진다.
브런치가 지난 기억을 찾아보게 한다. 브런치가 지난 추억을 다시 불러온다. 글쓰기가 명료한 정신으로 지난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누구는 혼자 하는 여행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 https://brunch.co.kr/@jkyoon/64 )이라고 했는데, 혼자 방랑하며 하는 글쓰기는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성찰뿐 아니라 남은 여생을 어떻게 마무리할까를 계획하고 고민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