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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페페 Oct 20. 2020

돈의 관점이 가장 치열하고 정확할 수 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다. 살면서 참 많이 들은 말이다.  모든 걸 다 만족시키는 사람 상황 조건은 없다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걸 돈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것들에 국한해서 보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데는 있다.


해외에서 특히 대도시를 여행 하다 보면 스팟 별로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박물관 궁전처럼 관광객으로서 여하튼 가야 할 곳, 쇼핑 스트리트, 소호스러운 곳, 핫 플레이스, 한적한 곳... 여기저기를 돌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쾌적하다 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 곳들의 공통점은 네 가지 정도다. 깨끗하다. 세련된 샵들이 있다. 초록이 있다. 그리고 스페이스가 있다. 가장 비싼 동네에 온 것이다. 이 네 가지 조건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곳에는 초록과 공간이 없다. 소호스러운 곳에는 스페이스가 없고, 소탈한 곳에는 세련된 샵들이 없다. 

여행자는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쾌적함을 경험하기가 거주자들에 비해 유리하다. 무리해서라도 그런 곳에 하루쯤 숙소를 잡으면 되니까. 깨끗하고 좋은 샵들이 있는데 초록과 공간이 있으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라는 게 있는지 각각의 구획에 사는 사람들은 가격으로 정해진 보이지 않는 그 선을 쉽사리 넘지 않는다. 각자가 편한 분위기라는 게 있다고나 할까. 여행하며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 호텔 화장실이 제일 깨끗한데도 분위기가 그어 놓은 그 선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묘하게 필터링 한다.


집을 구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본인의 예산으로 물 좋고 정자 좋은 집은 절대 못 구한다는 걸. 맘에 드는 집은 내가 정한 예산에서 꼭 어느 만큼 - 무리를 조금 더 하면 들어갈 수도 있을 듯 싶은 만큼 - 의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무리를 하면 허리가 휠 걸 알면서도 당장은 그 집에만 들어가면 행복이 펼쳐질 듯 하니 미칠 노릇이다. 이럴 때 우리는 소망한다. 돈 벼락이 내렸으면. 


가격은 지구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기준표다. 선택이 헷갈릴 때 가격을 보고 고르면 정도의 차이가 매우 정확하게 적용된다.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만나 수요가 넘치지도 공급이 넘치지도 않게 딱 만나는 지점, 아주 치열하고 정확하게 결정되는 시스템이 가격이다. 부동산 가방 옷 음식 숙박 교통 산부인과 장례식장... 비싼 가격은 그 대가로 쾌적함을 제공한다. 

가격이 가치는 아니다. 가치는 저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쾌적함의 기준으로 보자면 가격은 아주 정확하게 매겨져 있다. 저마다의 가치에 따라 가격표의 기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그래서 다행이다. 어느 수준의 가격대 이상을 신경 안 쓰고 살아도 되는 자유가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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