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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페페 Oct 20. 2020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완벽하게 이해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퇴사를 하고 토스카나로 이른바 머무는 여행을 떠났다. 몇 군데 숙소를 정해 동선이 별로 없는 여행이었다. 한 달의 체류도 주재원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몇 일 일정의 찍는 여행과는 패턴이 달라진다. 단기 관광객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분주히 돌아 다니며 보고 듣고 맛 보려 한다. Try as much as I can. 반면 머무는 이는 시간의 여유도 여유지만 전체 에너지 배분을 고려해 하루 일정을 짠다. 들르는 이와 머무는 이는 장을 보는 품목도 가격을 보는 시선도 다르다. 찍는 자는 지금 먹을 것에 집중하지만 머무는 자는 냉장고에 넣어 둘 아이템을 생각한다. 

언어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단기 관광객은 장소를 빨리 찾아가는 커뮤니케이션이 주가 된다. 언어가 단순해야 효율성이 높아진다. 혼선을 줄이려면 fluent한 영어 보다는 짧고 명확한 단어 교환이 낫다. 머무는 이는 시간이 많다.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현지 TV도 보게 되고 생활에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살짝 복잡한 대화가 필요할 때도 있다. 현지 언어를 조금이라도 알아 두면 도움이 된다.


토스카나에서 난 언어에 갇혀 버렸다. 시골 농가의 TV채널은 온통 이탈리아어만 나왔다. CNN BBC조차 접근이 안되었다. 혼자 머무는 그 곳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내가 아는 언어에 닿기 위해 넷플릭스, 인터넷방송을 서칭했지만 다 막혀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조각난 무료 컨텐츠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논스톱의 장시간을 채우기엔 무리였다. 인터넷으로 엑세스한 CNN BBC 역시 조각 영상만을 열어 놓았다. 나는 머무는 이다. 나에게는 죽 흘러가는 컨텐츠가 필요했다. 그런 방식으로 내가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라디오 뿐이었다. 아 이래서 해외에 있는 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구나. 

인터넷 라디오를 들으며 저녁 산책을 하고 있었다. 토스카나의 시골은 부드러운 햇살, 찬란한 초록, 퍼져가는 저녁 종소리가 어우러져 한없이 아름다웠다.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가 헤드폰에 흘렀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음악은 고조되고 나의 울음은 주체할 바를 몰랐다.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 내가 보낸 시간과 공간, 신해철의 죽음, 고립된 곳에서 헤드폰으로 연결된 완벽하게 알아 듣는 친숙한 노래...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나는 신나게 울었다.


관광객으로 살 것인가 머무는 이로 살 것인가 현지인으로 살 것인가. 관광객은 이해 받을 필요가 없기에 예민해질 필요도 없고 부딪힐 필요도 없다. 필요한 선에서 서비스를 받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머무는 이는 머물러야 하는 시간만큼 노력이 수반된다. 언어를 살핀다. 나는 내 삶의 관광객인가 머무는 이인가. 아주 헷갈리는 지점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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