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Lee Feb 17. 2023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쉬웠어요

발레에서 얻은 깨달음


2년째 일주일에 두 번씩 발레 수업에 가고 있다.


그리고 매 수업 시간 선생님은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속삭이듯 얘기한다.


"J씨, 릴랙~스하세요."


여전히 다른 학생들한테는 "조금 더! 한번 더!"를 외치는 선생님이 나한테만 유독 릴랙스를 강조하게 된 건 수업을 시작하고 1년반쯤이 지나서부터였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학교생활도 운동도 무엇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선이라 배우며 컸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고, 일단 학생이라면 공부를, 직장인이라면 일을, 그게 무엇이든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성실함이고 착실함이며, 그게 바로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 배웠다.


그리고 그런 내 성격은 발레를 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뻣뻣한 몸을 가진 것 치고는 고통에 비교적 무딘 편이라 스트레칭을 늘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무리해서 했고, 스쿼트나 복부운동을 할 때는 숨이 턱 막혀올 때까지 참고 했다. 조금은 무식하게, 그러나 그게 바로 내가 배운 ‘무엇이든 열심히’하는 모습이었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그만큼 힘이 더 들어갔다.


그러자 발레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여기저기서 잦은 부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한동안 발목이 아파서 압박붕대 등을 감고 다녔고, 그다음엔 무릎이 아파서 한동안 고생했다.


발레를 6개월쯤 했을 때는 심지어 엄지발톱이 안 자라기 시작했다. 발톱은 손톱에 비해 천천히 자라는 데다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부위라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챘는데, 깎은 지 한 달이 넘도록 변화가 없어 이상하다 생각했고, 그 뒤로도 두어 달 발톱은 자라지 않았다.


선생님은 '전공생도 아니고', '토슈즈를 신는 것도 아닌데', 취미발레하는 학생이 발톱이 안 자란다는 얘기는 듣고 보도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실제로 선생님 발레단 동기들한테 물어봤는데, 아무도 그런 일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놀라워함.)


작년에 발레쌤한테 보낸 카톡 - 실제로는 2mm도 자라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은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수업에서 평소보다 조금 더 무리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온 날 오른쪽 골반과 허벅지 쪽에 처음 느껴보는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고통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둘째 날 밤엔 옆에서 자는 남편을 깨워 진통제까지 받아먹어야 할 정도로 심해져 있었다.


다리를 구부리지도 피지도 못하는 건 물론이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저 끙끙대며 진통제의 효과가 나기만을 기다렸는데 결국 별 소용은 없어 밤을 꼴딱 새웠다.


알고 보니 골반쪽에 염증이 생긴 듯했고 그 염증이 신경을 건드리며 아팠던 게 아닌가 추측하는데, 다행히 일주일쯤 후에 완전히 없어졌다.


그런데 그 고통을 한번 겪고 나니 너무 무서웠다. 또 그렇게 아프게 될까 봐.




서른이 훌쩍 넘어 발레를 시작했다. 취미로.

내가 이제와 무슨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건강한 몸을 만들고자 시작했던 운동인데, 나는 그동안 몸이 주는 신호를 계속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걸 깨닫고도 여전히 멈추는 법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늘 내게 '열심히 하라'고만 가르쳤지, 어느 누구도 '힘을 빼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지난해 말, 선생님은 큰 결심을 한 듯이 내게 말했다.

"J씨, 앞으로 저는 J씨한테 릴랙스 하는 법을 가르칠 거예요."


그리고 제발 좀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그렇게 힘을 빼는 연습을 한 지 이제 두 달쯤이 되어간다. 선생님은 몸을 꼿꼿하게 세우되 힘을 꽉 쥐고 있지는 말라고 한다. 어깨는 내리고 호흡은 내쉬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알겠다. 힘을 빼는 법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렇게 나는 아직도 힘 빼기 연습 중이다. 아마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사진 출처: unsplash.com



                    

매거진의 이전글 자축, 브런치 1주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